감리교 신학대학 송순재(51·기독교 교육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대표적 이론가이다. 청소년의 자율성을 북돋워주는 유럽의 다양한 (중·고등) 학교를 소개, 국내에 대안학교들이 생겨나는데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던 그는 "외국의 다양한 교육을 소개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바뀌기를 바라서였는데 우리나라는 공교육은 그대로인채 대안교육은 외따로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는 지난해부터 가톨릭의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교육분과와 함께 하던 '학교 교육개혁운동을 위한 교사 연구모임'을 올해부터 일반 학교 교사들에게도 개방하고 공교육을 변화시키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의 교육개혁은 진보적인 단체들을 중심으로 학교가 바로 서지 못하도록 만드는 제도를 비판하는데 치중해왔다"며 "그러나 이제는 제도 탓, 남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공교육의 내부 개혁을 위해 노작(勞作)교육의 도입을 가장 강조했다. 한국 교육이 갈 바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그의 말을 들으러 간 날, 그는 학생들과 산정수업을 한다고 인왕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르는데만 1시간반이 걸린 만만찮은 산행이었다.
―왜 산에서 수업을 하나
"사람은 자연속에서 본성을 찾을 수 있다. 프랑스의 교육학자인 프레네는 학교를 반드시 전원에 두라고 했을 정도이다. 인왕산에 오르고 내리면 3시간 정도를 걷는데, 이 정도 가지고도 쩔쩔매는 학생이 많다. 그만큼 요즘 젊은이들은 몸이 약하다.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서도 산행은 아주 필요하다. 같이 산을 오르고 함께 밥을 먹으면 학생들의 참모습이 보인다. 학교(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소재 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인왕산이 지척이다. 이렇게 좋은 산을 졸업할 때까지 학생들이 한번도 오르지 않는 게 너무도 안타까워 학기에 한번씩은 반드시 산에서 수업을 한다. 새벽에 산에 오르면 요정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학생들도 그런 체험을 했으면 좋겠다. 지난해에는 학생들과 계룡산을 여섯 시간 종주했는데 산행을 마칠 때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신발을 벗어들고 산을 내려왔다. 몸이 지혜를 파악하는 방식은 그만큼 독특하므로 체험해보아야 한다."
―노작교육이란 무엇인가.
"몸을 움직여가며 배우는 것을 말한다. 뜨개질이니 밥짓기, 동물 기르기, 장 담기, 농사일처럼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일은 거의 모두 손을 사용하고 몸의 힘을 써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노작에는 관심도 없고 전혀 할 줄도 모르며 이 같은 무능력을 당연시한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교육하면 머리로만 익히는 것으로 생각해서 학생들에게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현실과 이론이 따로 놀고, 학교를 나와도 쓸모있는 지식을 배우지 못하고, 많이 배우는 것이 기쁨을 주기보다는 경쟁 속에서 노이로제만 심해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교육이란 인간이 어떻게 참다운 인간으로 살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인데 교육학이 사람을 평가하는 방법론에 머물고 있어서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 위기에 있는 것 아닌가. 학교 당국에 몇 년을 설득해서 지난해 노작교육론 강좌를 개설했다. 작년에는 인형 만들기를 체험해보았고, 올해는 목공을 가르치려 한다."
―왜 하필 노작교육인가.
"몇 년 전부터 목공에 관심이 많아서 목공을 배웠다. 장인(목수)들은 말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스스로 배우게 했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체험했다. 우선 교육이란 스스로 깨우치게 하는 것이라는 진리.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교육이란 공부 잘한다는 사람을 따라가는 것 뿐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부자리 개고 방 치울 줄 아는 것이 중요한데 부모들은 이런 일을 다 대신해주면서 '공부해라' '공부해라'를 되뇐다. 이러다 보니 지식이 삶과는 따로 논다. 목공을 배우는 현장은 아주 고요하다. 고요한 가운데 자신을 많이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목수분들이 한결같이 마음이 곱고 남을 배려해서 자기만의 세계가 있으면서도 협동도 잘되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는 인간의 최고 단계가 아닌가. 주위에 물어보았더니 몸을 움직이는 장인들은 다들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을 살릴 길은 노작교육을 빨리 도입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학생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지난해 인형만들기를 하면서 바느질을 처음 한 학생들도 제법 되었다. 이들은 인형을 만들면서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과 감춰두었던 내면이 나타났다고 한다. 올해는 수강생이 너무 늘어나 40명으로 제한했다. 신학대학을 졸업하면 대부분 목회자가 되는데 목회자는 정신적인 직업인이다. 그런데 이들이 정신적인 가치만 알고 노작의 중요성을 모르면 위험한 엘리트 집단이 될 수 있다. 노작 교육은 학생들에게 노동의 중요성과 노동계급의 존귀함을 깨닫게 해준다. 지식인이 노작을 알면 계층간의 차별이라는 것 역시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겠는가. 또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면서 창조와 예술의 참뜻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장한나나 장영주의 연주는 고통스러워서 들을 수가 없다. 대단한 경지임은 틀림없지만 그것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서 나타난 결과이다. 예술이란 아주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노작교육은 직접 무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배우게도 해준다. 저마다의 손에서 각기 다른 물건이 나오는 것을 체험하면 거리의 네모반듯한 건물과 차길 등 획일적인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도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중요하다면 대학교육부터는 너무 느린 것 아닌가.
"그렇다. 초등학생부터 노작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 교회를 통해서라도 노작교육이 실현되도록 신학대학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을 해내면 사회가 바뀔 수 있다. 우리나라 교육의 위기는 마음과 몸이 분리된 데서 비롯된다. 실업계 학교에서는 인문 교육을 너무 축소시켰고 인문계 학교에서는 노작교육을 외면한다. 초등학교에서도 글공부만 공부인줄 한다. 음악, 미술, 체육 과목에서도 몸을 움직이고 창조하는 즐거움이 사라졌다. 그래선 안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고, 밭을 가꾸는 즐거움을 일깨워줘야 한다. 학교에서 공구를 만지는 법을 일찍부터 가르쳐야 한다. 오히려 초등학교 고학년에 가서 익숙해져야 할 컴퓨터 교육은 저학년부터 가르치고, 저학년부터 익히게 해줘야 할 노작교육은 전혀 없다."
―2년전부터 공교육에 서당교육의 장점을 도입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는데.
"다 같은 맥락이다. 서당교육은 지역사회가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고, 교육도 몸을 잘 간수하는 법부터 가르친다. 먼저 이부자리 개고 주위를 깨끗이 한 후 공부를 하게 한다. 여름철 해변을 가보라. 교육열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람들이 쓰레기 하나를 치울 줄 모른다. 경제적으로 잘 살게는 되었지만 왜 배우는지, 인간의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한 철학이 없으니까 문화적으로는 야만의 시대를 사는 것이다. 그리고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제도 탓만 한다. 아니면 돈이 없어서라고 말한다. 입시제도가 문제가 있다. 그러나 학생들을 경쟁으로만 내모는 것이 과연 제도만의 문제인가, '힘있는 이들'만의 문제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하는 나의 잘못은 없는가, 이제는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보성초교사태에 관해…
기간제 여교사의 차시중을 둘러싼 전교조와 학교 지도부와의 갈등이 교장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 충남 보성초등학교 사태에 대해 송 교수는 말하길 꺼렸다. 그러나 교육학자에게 현안에 대한 대답을 강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송 교수는 우선 서 교장의 죽음에 깊은 조의를 표한다고 했다.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겪었을 마음고생도 가슴 아프고 서 교장의 죽음 이후 전교조가 즉시 애도의 뜻을 표시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큰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과연 교육자가 이런 문제에 죽음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죽음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며 극단적인 회피인데,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이런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교육자란 행동 하나 하나가 결국 표양이 될 수 밖에 없는데 서 교장이 처한 어려움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힘들더라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어린이들 역시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을 익힐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죽음이라는 상황이 닥치자 그 전에 제기되던 모든 논의들이 사라져버리고 죽음의 책임소재만을 가리게 되는 현실도 안타깝다. 그는 "누구의 책임이냐로 대립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쟁점이 되었던 사안에 대해 무엇이 더 교육적인가를 차분하게 생각해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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