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학을 가르친 교수는 강의 마지막 날 흰 종이를 한 장씩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아름다움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강의와는 아무 상관없는 질문이었다. "이름을 적지 않아도 좋다고, 자유롭게 답을 써보라고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제출한 아름다움이란 '인간' '소통' 같은 지극히 오래된 가치였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5일 만난 소설가 최윤(50·서강대 교수)씨는 세번째 장편소설 '마네킹'(열림원 발행)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한 갈증이 작품을 쓰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창작의 동기이고 소설의 주제다. 아름다움을 좇는 과정이 소설의 내용이기도 하다. 작가 자신 이를 두고 "무엇을 썼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썼는가의 문제"라고 밝힌다. 소설 '마네킹'은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이다.
지니라는 여자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로 난 그는 어렸을 적 목이 졸려 말을 하지 못하게 됐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가 광고 모델이 된 덕에 집안 식구들이 먹고 살 수 있었다. 그 여자가 어느 날 집을 떠났다.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광고 장면을 촬영한 뒤였다. 지니의 여행, 가족과 매니저의 목소리, 우연히 만난 지니에게 매혹돼 지니를 찾아 나선 해양연구소 연구원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소설은 말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여정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말인 셈이다.
작가는 이 주인공을 통해 현대인의 욕망을 비춰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니는 '마네킹' 같은 존재였다. 그 자신 운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주변 인물의 욕망을 투영할 뿐이었다. 아름다운 그에게 비춰진 사람들의 욕망은 아름다운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사라지자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추한 것인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윤씨는 아름다운 문체로 잘 알려진 작가다. 소설 '마네킹'도 다소 이국적인 것처럼 보이는, 섬세한 언어로 짜인 작품이다. 이를테면 매우 긴 이 한 문장이 그렇다. "바람은 가끔 생명의 자연스런 부패에서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 건조하게 불어와 주위를 배회하고, 자라기를 멈춘 채 풍성하게 펼쳐진 머리카락을 날리게 하며, 강인하게 굳어진 그녀의 몸의 이곳 저곳을 실로폰처럼 두드리다가, 마침내 그녀가 단단한 세계에서 유연한 세계로, 형체에서 추상으로, 유채색에서 무채색으로 그렇게 멀리, 마침내 액체나 기체 혹은 그 어느 것도 아닌 무형으로 세상 깊이 스며드는 일을 돕는다."
'마네킹'은 계간 '문학·판'에 5회에 걸쳐 연재된 소설이다. 1년 넘게 쓴 장편을 두고 그는 "마치 도서관에서 일주일 여 먹고 자면서 온 힘을 다해 집필하고 나온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작품과 동거한 기간이 농밀하다는 의미다. "치밀한 계산이나 화려한 꾸밈보다는 소설을 쓰게 한 동력에 기댔다. 절대적인 미(美)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던 중 나는 여성적 아름다움이 구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모성(母性)과는 다른 무엇이다. 소설 '마네킹'은 그 '무엇'을 찾는 길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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