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는 세계 70개국 대표가 모여 아프리카가 주요 원산지인 다이아몬드의 밀거래를 막기 위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 참가국들은 다이아몬드 수출국들에게 원산지 증명을 의무화한 '킴벌리 프로세스'에 서명하도록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국제 다이아몬드 거래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s)'로 불리는 아프리카의 불법 다이아몬드 거래를 막기 위한 법안에 서명했다. 지난달 15일 유엔 총회에서도 '피의 다이아몬드' 근절을 목표로 하는 국제 사회의 노력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다이아몬드와 내전
보석 중의 보석인 다이아몬드가 아프리카에서 '피의 다이아몬드'로 불리게 된 배경에는 아프리카 내전이 있다. 풍요로운 삶을 보장할 줄 알았던 석유가 중동 사람들에게 전쟁과 외세 개입의 불씨가 돼 온 것처럼 다이아몬드는 끊임없는 아프리카 내전의 불씨이자 전쟁을 뒷받침하는 자금원으로 작용했다. 시에라 리온,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라이베리아 등에서 수십년간 정부군과 반군들은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와 군비를 조달해 왔다. 다이아몬드 산지를 장악하기 위한 양측의 치열한 싸움이 이어졌고 수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거나 쫓겨나야 했다. 미 하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시에라 리온,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전투로 650만 명이 쫓겨났고 370만 명이 내전 중에 사망했다.
아프리카 중서부에 위치하며 대서양을 면하고 있는 시에라 리온은 금, 보크사이트, 동 등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 매년 수백만 달러 어치의 다이아몬드 원석을 수출하지만 이중 상당부분은 반군 등에 의해 기니, 라이베리아 등 인접국과 정글을 통해 밀거래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1년 시작된 내전으로 이 나라에서는 수천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반군인 혁명연합전선(RUF)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정부에 대항해 부패와 가난과의 전쟁을 기치로 내걸었으나 이 같은 정치적 목표는 어느새 다이아몬드 산지 장악이라는 현실적 목표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났다. 영국 BBC 등 서구 언론들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반군들이 자신들이 장악한 다이아몬드 산지에서 협조하지 않는 주민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거나 내쫓았다고 전했다. 또 많은 주민들이 다이아몬드 채굴을 위해 노예노동을 강요 당했다.
서구 언론의 편향성과 과장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내전의 와중에서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풍요의 열쇠가 아니라 '저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도 사정이 비슷하다. 1960년 독립 이후 이 나라에선 9차례의 쿠데타가 발생했고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나라 내전에는 인접국인 차드와 콩코반군(MLC)은 물론이고 리비아와 프랑스 등 외세가 복잡하게 개입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나라가 이 작은 나라의 내전에 개입하고 있는가.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은 '다이아몬드'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수출의 54%를 차지하는 다이아몬드는 이 나라 독립 이후 분쟁과 부패의 원천이었다. 2001년 5월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리비아는 정부군을 지원한 대가로 석유와 우라늄 등 광물자원 채굴권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알 카에다와 다이아몬드
서구 언론들은 정보기관 보고서 등을 인용해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 카에다 조직이 '피의 다이아몬드' 밀거래에 관련돼 있다는 의혹을 여러 차례 제기했다. 라이베리아와 시에라 리온 반군 등으로부터 다이아몬드를 사들여 다른 곳에 파는 수법으로 돈 세탁과 자금 조성을 해왔다는 것이다. 영국의 민간 감시단체인 '글로벌 위트니스'는 알 카에다가 다이아몬드 거래를 통해 2,000만 달러의 돈 세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알 카에다가 1993년 수단에서의 테러 작전 이후 자산 동결로 재정 위기에 봉착하면서 다이아몬드 밀거래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킴벌리 프로세스
이 같은 다이아몬드의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해 2000년부터 논의를 시작한 국제사회는 지난해 11월 남아공 킴벌리에서 다이아몬드의 유통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제적 원산지 증명 기준을 마련했다. 킴벌리 프로세스라고 불리는 이 기준은 전세계 다이아몬드 거래의 4∼20%를 차지하는 '피의 다이아몬드' 밀거래를 막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단순한 유통질서 개선을 넘어 반군과 테러조직의 자금줄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여기에는 전세계 다이아몬드의 3분의 2를 사들이는 미국을 비롯해 52개국이 참여했다.
이에 대해 민간 감시단체들은 국제적인 대응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글로벌 위트니스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감시 기구가 마련되지 않은 채 나라별로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방식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 다이아몬드 산업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의 눈물'이라고 믿었던 탄소 결정체 다이아몬드(금강석·사진)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89억 달러 정도가 거래되는 거대 산업 중 하나다. 공식 통계가 이렇고 암시장 거래를 합하면 100억 달러에 훌쩍 넘는다.
BC 7∼8세기 인도 드라비다족에 의해 처음 사용된 다이아몬드는 로마시대 이후 왕족과 귀족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귀금속으로 분류되어 오다 186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규모 광산이 발견되고 근대적 채굴법이 채택되고서야 대중들이 지닐 수 있게 된 보석으로 자리잡았다.
남아공,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앙골라, 보츠와나 등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지역과 러시아 등에서 주로 생산되는 다이아몬드는 전형적인 식민지 산업 형태를 띠고 있다. 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영국의 독점 자본으로 출발한 드비어스사가 원석 유통의 80%를 독점하는 중앙판매기구(다이아몬드 신디케이트)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원석의 60%정도는 런던 소재 드비어스사를 통해 유통되며, 이 과정에서 가격은 일방적으로 결정된다.
2002년 드비어스사의 연간 거래량이 51억 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 세계 다이아몬드 가공업체들이 드비어스사의 원료공급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석 독점업체로부터 재료를 공급 받는 각국의 연마 전문업체들은 고작 소매상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런 유통 경로는 보석류 다이아몬드에 국한되는 것이며, 원석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공업용 다이아몬드는 일반 품목처럼 거래된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결혼 예물로 대중화한 다이아몬드의 대량생산은 무한정 이어지지 않을 듯하다. 지난 20년간의 지질 자료 등을 기초로 세계 최초 다이아몬드 지질 형성지도를 완성한 스티븐 셔리 카네기 재단 연구원은 대략 1억 년 전에 다이아몬드 형성이 사실상 끝났다고 진단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채굴되는 다이아몬드는 주로 33억년 전, 29억년전, 12억년 전에 진행된 대규모 지각변동 결과로 생성됐고, 그 이후 다이아몬드를 만들어 낼 이렇다 할 지각 변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다이아몬드는 생성초기 지구의 지각변동 산물"이라며 "그래서 다이아몬드는 고대 지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독특한 창"이라고 말한다.
다이아몬드 관련, 몇 가지 상식을 덧붙인다면,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캐럿(carat·0.2그램) 투명도(clarity) 색(color) 컷(cut·연마정도) 등 4C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크기는 클수록, 투명도는 투명할수록, 색상은 청색을 띤 백색에 가까울수록, 연마는 이상적인 비례에 일치할수록 가치가 높다. 같은 품질의 다이아몬드는 일반적으로 캐럿 수의 제곱비율로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가령 4캐럿 짜리 다이아몬드는 같은 품질의 1캐럿보다 4배 비싼 것이 아니라 16배 비싸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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