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용어중 와일드 피치(Wild Pitch)와 패스트볼(Passed Ball)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팬들은 그리 많지 않다. 투수가 잘못 던진 볼을 포수가 알을 까는게 와일드피치이고 반대의 경우가 패스트볼이다. 그러나 경계선이 애매모호해 일반팬들은 헷갈리기 일쑤이다.기록원들은 일반적으로 타자앞에서 바운드된 볼이 포수뒤로 빠지면 와일드피치로 기록한다. 그외 경우에는 포수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패스트볼로 판단한다. 특이한 것은 와일드피치나 패스트볼 모두 실책으로 기록하지 않다는 점이다. 투·포수는 다른 야수에 비해 볼을 다루는 기회가 월등하게 많아 투구할 때 미스플레이가 자주 발생하는 점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비록 실책은 아니지만 와일드피치나 패스트볼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경우를 종종 볼수 있다. 2001년 현대와 두산의 플레이오프는 와일드피치로 희비가 엇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해 10월15일 잠실에서 벌어진 3차전에서 두산은 현대 투수 전준호의 잇따른 폭투에 편승해 승리를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진출, 패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전준호의 폭투를 두고 뒷말이 많았다. 국내최고의 포수인 박경완이 능히 잡을 수 있었는데 놓쳤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물론 전준호의 와일드피치로 기록되기는 했지만 사실상 박경완의 패스트볼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이었다. 현대팬들중 박경완의 잘못을 탓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현역시절 폭투를 던진 경험이 없지 않다. 물론 그중 상당수는 포수가 책임을 져야하는 패스트볼로 둔갑한 경우도 있었다. 폭투는 투수의 잘못이지만 패스트볼은 포수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기록상 그렇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폭투이든 패스트볼이든 대다수 잘못은 투수에게 있다.
'패스트볼의 8할은 투수의 책임이다'는 야구불문율도 투수가 원인제공자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패스트볼은 투수의 사인미스로 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화구를 던지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후 갑작기 속구를 던지면 십중팔구 패스트볼이 된다. 포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투수는 아무 잘못도 없다. 끝내기 패스트볼이라도 나오면 포수가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적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가지고 판단하다보면 진짜와 가짜를 잘 구분할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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