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가족의 달 기획 -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항상 행동으로 말씀하신 어머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가족의 달 기획 -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 항상 행동으로 말씀하신 어머니

입력
2003.05.06 00:00
0 0

어무이. 호떡은 잘 굽고 계신가요? 프라이 팬 위로 타닥타닥 이리저리 튀어 오르는 기름은 잘 피하고 계신지요? 이제 한 쪽 눈을 감고도 호떡 만드는 일 정도야 식은 죽 먹기겠죠?5년 전인가요? 울산 남구 야음동 노인회관 앞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이 일 저 일 하시다 막 호떡 장사까지 시작하신 어머니가 담벼락 밑에서 호떡을 굽고 계시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발견했지만 저는 결코 눈물이 핑 돌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저렇게 말없이 나를 가르치려 하시구나' 하며 한참 동안 호떡 굽는 당신을 바라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경북 영일만 양포 어구. 꽃다운 열 아홉 나이, 군에서도 이름난 부잣집의 막내 며느리로 시집오셨다던 우리 어머니 아니었습니까? 어머니, 참 대단하세요. 저는 어머니가 지난 삼십년 동안 편안히 누워 계시는 뒷모습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예순 다섯이 되도록 단 한번도 한가로이 몸을 놀리시는 모습도 본 적 없고요. 왜 그러셨는지요?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저도 이제 서른 다섯. 결혼한 지 4년이 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절실히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저 역시 아이에게 굳이 이래라 저래라 말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든 것들이 그 아이에게 가장 큰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저는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무더위가 며칠째 기승을 부렸을 때 호떡을 굽고 계실 어머니가 불현듯 떠올라 전화를 했었죠. "어머니, 날도 더운데 며칠 쉬시죠?" 그랬더니 "야야, 간혹 밤 늦게 호떡 할매가 생각나 발길을 하는 사람 때문에 못 쉬겠데이. 마음이 편치가 않다"라고 대답하셨죠. 저는 차마 말리지 못했습니다. 더운 여름에도 밤늦게 어머니가 만드시는 호떡이 생각나 발길을 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탄탄한 인기를 누리고 계시다니 가슴이 뿌듯할 뿐이었습니다. 어머니. 그 누군가가 밤늦게 저를 떠올리고 발길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저에게는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요? 저도 어머니처럼 열심히 살아야 될 텐데요. 잘할 수 있겠죠?

어머니. 물론 한 쪽 눈을 감고도 호떡 만드는 일 정도야 식은 죽 먹기겠지만 프라이팬 위로 타닥 튀어 오르는 기름은 잘 피하셔야 해요. 가정의 달, 어버이날이지만 살가운 말 대신 "기름 조심하이소" 하는 것이 고작일 뿐인 어머니의 못난 아들이 올립니다.

/강태규·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