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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인생 58년… "웃으면 정말 복이 오죠" / 구봉서 배삼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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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인생 58년… "웃으면 정말 복이 오죠" / 구봉서 배삼룡

입력
200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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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병원에서 퇴원한 뒤로 건강은 많이 좋아졌어."(배삼룡)"임마, 니가 언제 몸이 나빴니? 지가 무슨 병자인 것처럼 굴고 그래."(구봉서)

'막동이' 구봉서와 '비실이' 배삼룡. 이제는 그 별명을 부르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나이가 들어 버린 일흔 여덟 동갑내기 코미디계 원로는 서로'임마, 자식아'하는 막역한 사이다. 1968년 MBC '웃으면 복이 와요'로 70년대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를 연 두 사람은 올해로 연기생활 58년 째를 맞았다. 4,5일에는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두 사람의 공로를 기리는 헌정공연도 열렸다. 지난해 코미디언 이주일씨를 잃은 코미디계 후배들이 "더 늦기 전에 두 분을 위한 공연을 하자"고 마련한 무대였다.

이 공연이 열리기 직전 두 사람을 만났다. 무릎관절이 안 좋아 거동이 불편한 구씨는 지팡이를 짚었고 배씨는 수술 여파로 조금 수척해 보였으나 말투에서는 두 사람 모두 왕년의 유머와 장난기가 넘쳤다.

건강 문제로 배씨에게 가벼운 면박을 줬지만, 구씨는 누구보다 그의 와병을 걱정했던 지인이었다. 구씨는 배씨가 지난해 말 쓰러져 병원에서 사경을 헤맬 때 매일 병원을 찾아 눈물로 기도를 해주었다고 한다. 경기 광주 퇴촌에 사는 배씨와 서울 잠원동에 사는 구씨는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서로 내왕하고 있다.

"우리는 눈빛만 봐도 뭔 소리를 할지 알아. 호흡이 맞고 자시고 할 것도 없어."(배삼룡)

"최근에야 아주머니가 나이를 가르쳐줘 동갑인 줄 알았어. 맨날 지 나이를 속이더라고. 내가 지보다 한 달 빨리 태어났거든."(구봉서) 이 말이 나오자마자 또 다시 티격태격이다.

"한 달 아래도 아래냐? "

"야, 오뉴월 하루 햇볕이란 말이 있다."

1946년 서울 변두리의 한 극장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광복 이후 국방경비대 군예대에서 함께 연기를 시작했다. 배씨가 어눌한 표정과 모자라는 몸짓 연기로 서민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었다면 구씨는 즉흥 연기보다는 구수한 익살로 인기를 얻었다. 구씨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수학여행' 등을 비롯, 6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막동이'는 58년 히트작 '오부자'에서 4형제 중 막내로 출연해 붙여진 별명이다.

배씨는 언제나 실수하고 손해 보는 바보, 머슴 역 단골이었고, 구씨는 대감이나 사또 역을 많이 맡았다. 그렇게 해서 나온 배씨의 '비실이춤'과 구씨의 '양반 인사법'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우린 노는 물이 달랐어. 이 놈은 있는 집 자식이었고,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나는 그저 좋아서 뛰쳐 나와 돌아다닌 거지. 난 시골 유랑극단을 따라 다녔고, 구봉서는 서울에 있는 극장 무대에 섰지. 초창기 때는 내가 이 사람보다 두세 배는 더 고생했지."(배삼룡)

"그래도 우리 사이엔 라이벌 의식은 없어. 코미디는 호흡을 맞춰 서로 띄워줘야 하는데, 요즘은 개인기라고 해서 자기 잘난 체만 하더라고. 내가 이 사람을 돕고 그 사람이 잘 되면 다시 나를 받쳐주는 것이 바로 코미디야. 그래야 명도 길어지고."(구봉서)

두 사람은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뿐, 요즘도 활발한 연예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중소기업의 제품 홍보나 지방 경로잔치를 위해 모인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대에서다. 지난 달에도 15일 이상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변변한 조명이나 음향 시설도 갖추어 지지 않은 간이무대에 선 그들을 보는 후배들의 마음은 안타깝다.

"자의든 타의든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복이야. 지금도 무대에서 대중을 위해 연기하는 데 자부심을 느껴."(배삼룡)

"지금도 무대에 서면 젊은 애들한테 뒤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지. 이 나이 들어서도 무대에 서는 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이런 거지."(구봉서)

원로 연예인들의 약장사 홍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더니 배씨는 "우리가 약을 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무대가 있으니까 올라가는 것 뿐이야"라고 일축했다. "지금 방송에서는 우리가 설 무대가 없어. 지금이라도 무대에만 서면 몇 시간이든 할 수 있는 게 우리야."

구씨와 배씨는 2000년, 2001년 MBC '명예의 전당'에 코미디 부문 수상자로 나란히 올라 있다. 하지만 명예뿐이다. TV에 10대 위주의 프로그램이 판치면서 정통 코미디 프로를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 대해 두 사람이 서글픔을 느낄 만도 했다. 후배들에게 쓴 소리도 뱉었다.

"젊은 PD가 젊은 프로를 만들겠다는 걸 나무랄 수는 없지. 그러나 우리더러 젊은 애들 흉내내라고 하면 우리가 못할 것 같아? 그건 연기가 아니라 까부는 거야, 해프닝일 뿐이지. 줄거리가 없잖아."(구봉서) "지금 MBC 사장, 제작본부장 모두 '웃으면 복이 와요' 시절 AD였어. 우리를 밟고 성공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우리는 뭐야? 대중문화 연예인처럼 홀대 받고 있는 사람이 없지."(배삼룡)

현재 비슷한 또래의 희극인은 송해씨 말고는 없다. 서영춘, 곽규석씨도 세상을 떠났다. 특히 구씨와 명콤비를 이뤘던 곽씨가 99년 세상을 뜬 후 두 사람은 더 가까워졌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먼저 가면 정말 은퇴하는 수밖에 없어. 구봉서도 오래 살려면 내가 사는 경기도로 와야 돼 " "그래 임마, 니가 오래 오래 살아서 내 송장까지 치워라." 황혼의 구씨가 던진 서글픈 한 마디에 배씨가 빙긋이 웃었다.

끝으로 웃으면 정말 복이 오느냐고 물었다. "아침 한 끼를 굶어도 저녁 때 가족과 웃으면 넘어갈 수 있는 법이야. 그만큼 웃음은 필요한 거지."(배삼룡) "우리나라에서 코미디언은 괴로운 직업이야. 사람들이 웃음에 대한 동맥경화증이 걸려 있거든. 웃음에 인색해."(구봉서) 그런데 배씨가 또 한마디 거든다. "얘는 꼭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말만 골라서 해."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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