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조세감면을 없애거나 축소해 조세 형평을 확보하겠다는 참여정부의 조세정책이 정치권의 선심공세와 경기활성화 압력으로 벌써부터 무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조세감면 규모는 총 14조4,000억원으로 연간 세수 114조원의 10%를 넘어설 정도로 남발되고 있는 실정. 이 때문에 대기업의 법인세 명목세율은 27%에 이르지만 실효세율은 15% 안팎에 그치고 있다. 참여정부는 조세감면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여기서 생긴 재원에서 법인세를 인하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조세감면이 줄지 않을 경우 법인세 인하도 어려울 전망이다.5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이낙연 의원 등 25명은 최근 올해 말 시한이 끝나는 영농조합에 대한 법인세 면제, 농민의 증여농지에 대한 증여세 면제, 2,000만원 이하 조합예탁금에 대한 비과세 등 각종 조세특례 조항을 2008년까지 5년간 연장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원들이 조세특례 연장을 추진하는 항목은 영농조합법인의 농업소득 등에 대한 법인세 면제 영농조합법인 조합원의 배당소득에 대한 소득세 면제 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중소기업협동조합 등의 법인세 저율과세 농협·수협·산림조합의 고유목적 사업준비금 손비인정 농어업용 기자재에 대한 부가세 영세율 적용 등 10여 개나 된다.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등 일부 부처와 재계는 "경기 여건이 어려운 상황에서 세수감면 대상과 규모를 축소할 경우 투자 및 소비심리 위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연구개발(R&D) 인력과 비용에 관련된 10개 항목의 과세특례 생산성향상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중소기업 투자세액공제 등 20여 개 조세특례 항목의 시한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3월말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기업투자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제조업 등 25개 업종을 대상으로 투자액의 10%를 세액 공제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시한을 올 6월말에서 연말로 연장했다.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 차원에서 외국인 투자 등에 대한 조세특례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다. 정부는 2월 국내거주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의 조특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고, 전경련은 최근 보고서에서 "외국인의 배당소득에 대해 비과세 하는 등 외국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당초 올해 만기가 되는 조세특례 일몰 조항 70여 개 중 상당수를 없애거나 축소해 세수를 늘린다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재경부 관계자는 "조세특례 조항 축소 및 폐지를 통한 세제의 공정성 확보는 참여정부의 핵심 공약사항"이라며 "이를 통해 늘어난 세수를 법인세 인하와 공적자금 상환 등에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각종 조세특례를 연장해주는 선심성 법안을 잇따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조세 전문가들은 "조세특례 규정의 통상 연장기간은 3년이어서, 만일 이번에 다시 연장될 경우 참여정부 임기 내에 조세감면 축소는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며 "올해 세수 전망이 비관적인 상황에서 조세특례를 연장하다 보면 정당한 납세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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