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블루스 잼 세션(즉흥 합동 연주)을 두고 '홀딱 벗고 목욕탕에 같이 들어가 있기'라고 표현한다. 개인의 욕심도, 공명심도 자리잡을 수 없는 진짜 음악의 세계라는 말이다. 죽이 맞는 뮤지션끼리 우연히 모인 자리에서, 그야말로 예측 불허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한판 명승부라고나 할까.블루스가 죽어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MP3 때문에 진짜 음악이 설 자리를 잃어 가는 현실이다. 그것은 왜 가짜인가?
요즘 시대가 시대인지라 나의 사이트에도 MP3 파일로 변환시켜 놓은 내 노래 200여곡이 쭉 깔려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파일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음악이라 부르기에도 민망스럽다. 들을 만 하려면 메가 바이트급은 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킬로 바이트 수준에 머무는 것이 현실이다. 내 표현대로 하자면 음악이 깎여도 너무 깎여 나간 것이다.
파일 용량이 크면 다운 로드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아무리 인(忍)터넷이라 하지만, 요즘 네티즌 중 몇 분이 걸릴 지도 모를 파일을 다운 받으려 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시중에 깔려 있는 MP3 파일의 음질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에겐 사실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귀는 심각하게 오염돼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리얼 뮤직이 존재하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뮤지션과 관계자들의 기회주의적 태도 때문이다. 원본 하나 잘 만들면 수십만개를 카피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데, 실제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제대로 밥 먹고 살겠느냐는 생각만이 팽배한 현실이다. 공연장이 극히 제한돼 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레드 제플린 노래를 듣고 록만 하던 청년이 실력을 갈고 닦아 막상 나와보니, 자기 음악이 제대로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십중팔구 댄스 뮤직, 컴퓨터 음악, 교회 음악, 트로트 가요 반주 중 한두 가지를 택해 생계를 유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연예인이 모였다 하면 놀이판으로 직결시키는 TV의 접근 방식이 온 국민에 감염된 결과다. 뮤직 비디오도 쇼의 다른 형태다.
내 곡은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첫 선을 보인 적이 한번도 없다. 모두 음악 감상실 등 일반인들과 직접 만나 인기를 얻은 것들이다. 제멋대로 무지막지한 잣대를 휘두른 독재 정권 때문이었다. 그 독재는 갔지만, 폐해는 끈질기게 존속되고 있다. 나는 믿는다. 나쁜 곡이라면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음악에 대한 평가는 대중이 한다. 그리고 대중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매체다.
1년 전쯤의 일이 생각난다. 우드스탁에 가끔 찾아 오는 바람에 면을 트게 된 한 전기 회사 사장인데, 그날따라 방송을 듣고 흥분하는 것이었다. '님은 먼 곳에'를 가리켜 트로트라고 했다며 이렇게 무식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애궂은 나한테 화풀이였다. 이렇게 우리 대중 문화의 수준은 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댄스나 트로트 프로에서 내 음악을 트는 우는 다시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음악적 자의식이란 전혀 없는 사람들 같다.
뉴욕에 갔을 때 일이다. 큰 레코드점에 가서 스웨덴의 인기 메탈 기타리스트 잉위 맘스틴(Yngwie Malmsteen)의 음반이 있는 지 물었다. 점원이 찾아 오는데 무려 30분이나 걸렸다. 한국에서도 제법 마니아가 있는 사람인데,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미국 문화 시장을 들러 보니, 답은 절로 나왔다. 뉴욕에서도 찾기 힘들다는 말은 곧 미국 것을 사라는 말이었다. 바로 미국 대중 문화의 자의식이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군 클럽에서는 비틀스 음악을 하는 것도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그들이 좋아 하는 것을 상품화시키면 사 갈까? 아니다. 그런 것들은 이미 미국 시장에 다 있으므로. 한국의 음악적 상품 중 사물놀이 같은 것은 민속적이어서 그네들이 좋아 한다. 그러나 현대 음악쪽으로 오면 우리에게 뭐가 있나?
나는 '로데오 거리'로 더 잘 통하는 이곳 문정동 중심부의 '우드스탁'을 거점으로, 햄버거집에도 가고 인근 가락농산물 시장에도 나가 본다. 내가 쇼를 하지 않고 음악만 해 온 덕택에 뒤늦게 누리는 복이라 여기면서도, 문제가 거기까지 오면 과거에 안착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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