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랜만에 띄워보는 편지예요.당신과 만난 지도 어느새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둘이서 출발했던 가족이 아들, 딸까지 네 명이 되었어요. 요즈음은 가끔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요. 이제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인가 봐요.
당신, 처음 살림 시작할 때 생각나죠? 지금 돌이켜보면, 철없고 무모했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요.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한 채 당신만 믿고 무작정 집을 나왔을 때 참 많이 울었어요. 월세 단칸방에 비키니 옷장 하나, 조그만 탁자에 올려진 거울, 몇 개의 그릇이 살림살이의 전부였지요.
그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당신은 학생이라 우리는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했을 정도였잖아요. 그래도 행복했던 건 당신의 따뜻한 사랑과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둘이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고 어떤 고생도 두려울 게 없었죠. 당신이 학교를 졸업하던 날, 나는 이모 앞에서 많이 울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된데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살았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복받쳐 올랐죠.
다행히 당신은 졸업 후 곧바로 취직을 했고 우리 생활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어요. 반대만 하던 아버지와 언니도 결국 우리 결혼을 승낙해 당신의 몇 달치 봉급을 꼬박 저축해 조촐하게나마 결혼식도 올렸었는데…. 생각나죠?
여보! 언젠가 당신이 내 손을 잡으며 그랬죠. 먼 훗날 지금의 힘든 생활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때가 올 거라고 말이에요. 당신의 말처럼 그 때가 그립고 아름다운 건 이제 우리도 살 만해졌기 때문일까요?
잘 자라준 우리의 보배, 재성이와 미주에게 아빠와 엄마의 어려웠던 시절을 들려주면서 이따금 행복한 감상에 빠져들곤 하지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당신과 내가 함께 했던 그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우리의 인생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큰 자산이 되리라 굳게 믿어요.
그런데 여보! 우리가 힘들 때마다 용기를 주시던 이모님이 많이 편찮으신 것 알죠? 우리도 이제 주변 사람들을 생각할 때가 되었나 봐요. 당신이 내게 베풀었던 사랑과 믿음으로 이웃들을 생각했으면 해요. 빠듯한 생활을 핑계로 너무 우리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아직도 우리에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중요한 것 알죠? 지난 세월동안 당신과 내가 보여준 사랑으로 더욱 멋진 삶이 되었으면 해요.
여보! 당신의 사랑에 거듭 감사해요. 변함없는 믿음으로 우리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며…. 당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가.
/kymk0702·독자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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