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들이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유치에 열을 올렸던 TV세트장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관광객 증가 등 실제 효과는 없는 반면 유지 관리 부담만 안겨주는 애물단지가 됐기 때문이다. 환경파괴 등 부작용이 커 원성을 사는 곳도 있다.충북 제천시 금성면 충주호변에 옛 포구마을을 재현해놓은 KBS 해상세트장에는 개장 첫해인 2000년 드라마 '태조왕건'의 인기에 편승해 118만 명의 관광객이 몰렸다. 그러나 2001년 80만명, 2002년 37만 명으로 관광객이 급감했으며 제천시의 공식 수입도 한해 2,000여 만원의 주차료가 전부다. 제천시는 세트장을 유치하면서 프로그램 제작비, 부지 조성비 등으로 12억원을 방송사에 지원했다.
SBS 드라마 '대망' '천년지애'의 촬영지인 제천시 청풍면 청풍문화재단지 세트장은 2001년 10월 개장 후 두세 달만 관광객이 몰렸을 뿐 이후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제천시는 세트장 건립에 20억원을 쏟아 부었다.
MBC 드라마 '허준' 촬영을 위해 장터와 나룻터를 재현한 충북 충주시 살미면 세트장은 드라마 방영이 시작된 2001년에만 8만 여명의 관광객이 다녀갔으나 지난해에는 2만 명 수준으로 줄었다. 이 때문에 이곳의 농특산품 매장은 개장 1년도 안돼 문을 닫았다.
경북 문경시가 문경새재 도립공원내 시유지 2만 여 평을 제공해 왕궁과 성곽 등을 재현한 KBS세트장은 2000년, 2001년 200만 명이 넘던 관광객(문경새재 관람객 포함)이 지난해에는 150만 명 선으로 감소했다. 이곳에서는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등이 촬영됐다.
'태조왕건' 등을 촬영하기 위해 문을 연 경북 안동시 세트장도 관람객이 2001년 38만 명에서 2002년 33만 4,000명으로 5만 명 가까이 줄었다. 안동시는 세트장 건립에 40억원이나 투입했다.
TV세트장을 유치했다 환경을 망친 경우도 있다. 제주 남제주군 주민들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됐던 SBS 드라마 '올인'의 주무대인 섭지코지 야외 세트장 때문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성당과 수녀원, 러브하우스 등 세트장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갑자기 몰리면서 주변 유채꽃밭과 푸른 초원이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남제주군은 세트장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현 임시 세트장을 해체한 뒤 영구 시설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혀 환경단체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자치단체가 '인기 드라마의 무대만 되면 지역이 홍보되는 것은 물론 짭짤한 관광수입도 챙길 수 있다'는 맹목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 엄밀한 분석을 도외시한 채 유치에만 매달렸기 때문. 충북개발연구원 정삼철 박사는 "사극 붐이 일었던 3,4년 전부터 세트장 유치전이 본격화했다"며 "시설도 옛 가옥, 관아 등 천편일률적이어서 신선한 맛이 없다"고 지적했다.
자치단체들은 TV세트장이 투자 비용에 비해 효과가 크게 떨어지자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제천시는 수익을 내기 위해 최근 야외 세트장 임대 사업을 시작했다. 안동시는 안동문화관광단지 조성과 연계해 현재 4만7,000평인 야외 세트장을 15만평으로 확장키로 했던 계획을 잠정 유보했다. 2월 방송사로부터 세트장 관리권을 넘겨 받은 충주시는 관리권을 다시 가져가라고 방송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재정이 열악해 인력 충원과 시설 보수비 등으로 매년 수천만원을 지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삼철 박사는 "드라마의 '반짝 인기'를 등에 업으려는 욕심에 성급하게 관광명소화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며 "고장의 역사를 기록한 테마공원 등으로의 전환도 생각해봄 직하다"고 말했다.
/청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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