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축소지향적 신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축소지향적 신당

입력
2003.05.06 00:00
0 0

노무현 대통령 주변에 포진한 정치인들은 신당에 대해 저마다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 창당 다음해에 실시된 선거에서도 서로 다른 결과를 맛보았다. 과거의 신당은 새천년민주당이 아니라 1995년에 생긴 새정치국민회의를 말한다. 선거는 당시 김대중 총재가 통합민주당을 떨치고 나와 치렀던 96년 15대 총선이다.굳이 몇 단계를 건너 뛰어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것은 몇 가지 상황이 연상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당시도 선거를 눈 앞에 두고 신당으로 짐을 싸겠다는 측과, 갈 테면 가라는 측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 때 깨진 정당과 지금 깨질 듯한 정당이 접두사가 다를 뿐 같은 민주당이란 이름인 것도 공교롭다.

무엇보다 연상을 자극하는 것은 과거와 오늘의 신당에서 느껴지는 굵은 인연의 줄이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조언자 또는 동지들인 신주류는 내부에서 신당 창당방식을 놓고 생각이 갈라진 듯하다. 그런데 가급적 다양한 요소를 지니고 가려는 통합신당 방식을 선호하는 측이나, 색채를 뚜렷이 하고 변화의 폭을 키우려는 개혁신당 쪽 사람들이나 과거의 신당과 모두 악연과 호연(好緣)이 얽히고설켜 있다.

노 대통령의 조언자 그룹은 대부분 신당과의 인연이 좋지 않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는 96년 선거에서 DJ와 함께 수도권 일대를 누비며 지원유세를 벌였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텃밭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고 낙마했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도 마찬가지. 그는 선거결과를 예언하면서까지 분당을 막아보려 했지만 스스로 북풍의 직격탄까지 맞아 무릎을 꿇었다.

신당 행을 거부했던 김원기 민주당 고문, 유인태 정무수석도 모두 악연을 갖고 있다. 김 고문은 호남 홀로서기를 시도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큰 표차로 완패했다. 유 수석은 식당에서 잠시 정치후배를 만난 것 때문에 흑색선전에 시달리고 여야관계 보다 무서운 집안싸움의 매운 맛을 보았다. 유 수석이 다소 예외이기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 신당 창당 방식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반면 개혁신당방식을 주장하는 신주류들에게 신당은 정치적 경력의 문을 열어준 호연이었다. 정동영 의원을 비롯, 신기남 천정배 의원 등이 모두 96년 선거에서 스타급 초선의원으로 등장했다. 하급 당료직까지 나눠먹던 구 민주당 의 말기적 증상을 상기하면 신당이 없었던들 이들이 모두 공천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7년 전의 상이한 경험 때문에 서로 오늘날 신당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인과관계가 있다기 보다는 그저 인연이 묘할 뿐이다.

그러나 분당식 창당이 가져왔던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좋은 인연을 맺은 측이나, 나쁜 인연을 남긴 쪽이 같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색채의 단일 대오로 짜인 정당은 총선에서 결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4당 경쟁체제라는 선거전략이 다시 떠돌고 있지만, 1구 1인의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확실한 패착이 된다. 신한국당 국민회의 자민련 민주당 후보들이 경합한 7년 전에 신·구당 후보들은 곳곳에서 2, 3 등을 했고, 서울에서 처음 야당이 패배한 기록을 남겼다. 유권자들도 한 코드 일색 보다는 조금 다른 코드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모인 정당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보혁구도도 좋지만 색깔론 후보, 양복바지 후보, 면바지 후보끼리 모인 정당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빠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 승 우 정치부 차장 sw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