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비밀송금 의혹사건 특검 수사가 3주째 진행되면서 사건의 윤곽이 차츰 드러나기 시작했다.대북송금에 대한 DJ정부의 해명 골자는 "현대가 대북 사업권을 독점하는 대가로 5억 달러를 북한에 지급하기로 했고 이중 2억 달러의 송금과정에 국정원이 환전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결과 국정원이 단순한 환전편의에 그치지 않고 2억 달러 송금 전 과정을 주도한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2일 특검 조사를 마친 외환은행 백성기 전 외환사업부장은 "국정원 직원들의 협조요청으로 2억 달러를 송금했으며 송금방법은 국정원의 통상적인 해외송금 방식과 같았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의 송금주도 사실이 지니는 의미는 간단치 않다. 대북송금과 관련해 제기된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이른바 '2억 달러 정부 제공설'이다. 2000년6월9일 송금된 2억 달러의 경우, 현대상선의 산업은행 대출금 중 일부를 송금하는 형식을 갖추긴 했으되 실은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건네준 돈이라는 주장이다.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는 최근 "(대출상환과 관련해) 사정을 해도 시원치 않을 김충식 당시 현대상선 사장이 너무 당당하게 나와 의아했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의 '당당함'은 문제의 2억 달러가 현대가 책임질 사안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외환은행 관계자가 현대상선의 관련사실 자체를 모를 만큼 철저하게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2억 달러 송금과정은 이 같은 가설의 신빙성을 한층 높여주는 것이다.
백씨는 또 "(송금 이전에) 송금방법 논의를 위한 은행 임직원 내부협의가 있었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국정원의 해외송금 방식대로 2억 달러를 송금하면서 굳이 내부 협의까지 거쳐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전에 국정원이 2억 달러 송금의 '특수성'을 외환은행 측에 알리면서 송금절차를 협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금융권 등에서는 "국정원 측이 송금 하루전인 6월8일 김경림 당시 외환은행장을 시내 모처로 불러 환전 및 송금편의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이 경우 김 전 행장 등 송금에 관여한 당시 외환은행 관계자들은 돈의 최종 목적지가 북한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억 달러 송금의 정상회담 대가성 여부 등 사건의 본질은 김충식 전 사장 등 핵심 관계자들의 소환 조사를 통해 보다 명쾌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