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의 정쟁이 거세지면서 국정원 개혁이 흔들리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모두 대선공약과 반대되거나 동떨어진 처방을 내놓으면서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당론과 원칙을 수시로 바꾼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정원쪽에서는 "우리가 동네북이냐"는 볼멘 소리도 흘러나온다.우선 현재의 국정원 개혁안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당초 국내·해외 분야를 분리, 해외정보처를 신설하고 국내 사찰업무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해외정보처 신설안은 일찌감치 폐기됐고 국내파트에 대한 수술폭도 크게 줄었다. 관심을 모았던 대공수사권 폐지는 '고영구 원장-서동만 기조실장' 체제가 가동된 이후 검·경의 관할권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슬그머니 물러섰다. 현실론에 밀려 조금씩 뒷걸음 치다가 '점진적 개편론'으로 선회했다는 관측이다. 결국 제도적 개혁보다는 인적 청산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태도는 180도 달라져 국민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국정원 폐지론에 대해 "한건주의 깜짝쇼"라고 맹비난했고 해외정보처 신설도 반대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뒤 국정원 인사 문제로 청와대와 정치적 갈등을 빚게 되자 한나라당은 "국정원을 해체하고 해외정보처를 신설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당내기획단을 구성했다. 특히 기획단장으로 내정된 정형근 의원은 국정원 폐지와 개혁에 줄곧 반대해온 인물이어서 주변을 어리둥절케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야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개혁안까지 널뛰기를 거듭해선 곤란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을 범죄집단시하며 환골탈태를 주장하던 여권은 수뇌진 교체 이후 눈에 띄게 보수화 경향을 보이는 반면, 점진론을 펴던 야당은 인사문제를 꼬투리로 해체론을 주장하는 실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지대 정대화 교수는 "여당은 집권 후 생각이 바뀌었고 야당은 인사 분풀이를 하고 있다"며 "정략적으로 이용할 경우 개혁은 요원하므로 긴장관계 완화를 통한 여야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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