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재계가 '분식 털어내기'에 비상이 걸렸다.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과거 회계부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이 별로 없을 거라는 사실이 확인된 마당에 예정대로 집단소송 대상에 분식회계가 포함될 경우 기업이 한방에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 문제에 대해서는 여·야, 정부, 재계, 시민단체 등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제각각의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정답이 아니라는 데서 사태해결을 꼬이게 하고 있다. 하지만 '죄과(분식회계)'를 봐서는 '고해성사후 대 사면'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집단소송의 파괴력을 봐서는 "쓰러질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재계 주장이 단순히 엄살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다.
우선 정부는 '법 시행 후 발생한 분식회계에 대해서만 집단소송 대상으로 한다'는 당초 정부안이 그나마 최선이라는 주장이다. 과거의 회계부정에 대해서는 민사책임(투자자 손실에 따른 소송), 허위공시 등 증권거래법 위반, 세금 탈루에 따른 세법 위반 등만 적용할 뿐, 집단소송에 관한 한 소급적용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재계는 '한탕 해먹고 빠지는' 주가조작과 달리, 재무제표를 수정해 손실로 반영하지 않는 한 분식이 계속되는 회계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전경련 신종익 상무는 "분식을 한 게 2004년 1월 이후인지, 과거부터 해오던 것인지 입증하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의 회계장부를 모두 보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분식회계가 '분식인 줄 알면서도 수정하지 않은 행위'로 법원 해석이 내려질 경우에는 패소하지 않을 기업이 없다는 얘기다.
민주당 김효석 제2정조위원장이 지난 2일 "과거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대사면을 하거나, 집단소송 대상 중 분식회계는 1∼2년 유예기간을 주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발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방안 역시 문제가 심각하다.
과거 회계부정에 대해 기업들의 자진신고를 받은 다음 불문에 부치자는 사면론은 재계조차 무리한 요구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총수까지 구속된 다른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뿐 아니라 일괄적인 고해성사뒤 해당연도 재무제표에 한꺼번에 손실반영을 한다면 주가폭락 등 시장에 미칠 충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증권거래법 민법 세법 등의 사면도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재소자 사면'과는 차원이 다른 특별조치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거 주가폭락으로 손해를 입었던 투자자들도 동의할 리가 없다.
1∼2년 유예방안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이 방안은 기업들이 분식회계를 정리할 시간적 여유를 주자는 취지. 그러나 금융감독당국 고위관계자조차 "한두해만에 기업이 무슨 재주로 돈을 벌어 과거 분식을 다 털어낼 수 있겠으며, 설령 털어낸다손 치더라도 1∼2년간 시장충격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관련 전경련은 "유예기간을 최소한 4∼5년은 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분식회계에 대해서는 집단소송에서 완전히 배제하자는 주장과 다름이 없어 시민단체의 반발과 대외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하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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