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안 가운데 하나가 음주운전 단속 방식의 변경. 간선도로에서 모든 차량을 막고 무차별적으로 단속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음주운전 징후가 있는 차량만 선별적으로 단속한다는 것이다. 단속방식의 변경에 많은 시민들은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문제는 어떤 차를 어떻게 단속해야 하는지 경찰관들이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침이 나오기는 했지만 내용이 모호하고 전달도 제대로 안됐다.새 방식으로 해보니
노동절 휴일인 지난달 30일 밤 11시 방배경찰서 교통지도계가 음주단속에 나섰다. 2명 1개조로 3대의 순찰차량에 나눠 탄 단속반은 사당사거리 교통초소를 출발해 방배동 카페골목과 방배2동 주택가, 내방역, 이수역 인근 등을 옮겨다니며 단속활동을 벌였다. 물론 새 지침에 따라 차단은 하지 않고 의심 가는 차만 단속하는 식이었다. 박창현 지도계장이 탄 순찰차가 먼저 도착한 곳은 사당동 주택가 편도 2차로 이면도로. 단속에 나서는 직원에게 박 계장은 "사스를 우려해 측정을 거부하면 무리하게 측정하지 말라"는 당부부터 했다. 단속직원은 대부분 차량을 무사통과 시켰다. "도대체 어떤 차량이 단속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숙달돼 있지 않아 사실 어렵다"는 설명이다. 새벽0시30분께 방배중 앞 이면도로로 이동한 박 계장 일행은 약 20분 동안 여전히 감지기를 사용하지 않는 선별단속에 열중했다. 새벽2시30분까지 3시간30분동안 3개조의 단속반이 올린 음주운전 단속실적은 단 1건. 그러나 새벽0시40분께 단속현장 인근인 낙성대 고갯길에서 혈중알코올 농도 0.197%의 대학생(23)이 모는 에스페로 승용차가 택시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관은 "옛날 식 단속을 했으면 미리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라며 입을 삐쭉 내밀었다.
과거 방식대로 하면
방배서가 사당동 일대에서 단속을 벌인 지 4시간 후인 1일 새벽 2시50분 서울 중구 북창동 골목. 주당들로 흐느적거림과 취기가 최고조에 달한 서울의 대표적 유흥가에 남대문경찰서 교통지도계 나재관 반장이 이끄는 3명의 단속반이 나타났다. 나 반장 일행은 남대문에서 시청으로 향하다 신동아 빌딩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나타나는 북창동 골목 입구에 순찰차량을 세웠다. 단속반은 편도 2차로 도로로 진입하는 모든 차량을 정지시키면서 일일이 음주 감지기를 들이댔다. 이날 단속은 북창동 일대로 통하는 4군데의 진입로를 틀어막는 일명 '토끼몰이식'. 유흥가라도 육안을 이용한 선별단속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나 반장은 "이 시간에 북창동을 찾는 사람이라면 100% 2차나 3차로 들리는 경우라 차단식 단속은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운전자들은 "막고 단속하지 않겠다더니 왜 이러냐"며 음주측정을 거부,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어쨌든 5시10분까지 2시간여동안 진행된 단속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5%이상 음주운전자를 4명이나 적발해 입건했다.
모호한 단속기준
경찰청은 새로운 음주단속 방침을 내놓은 직후 지그재그 운전 차선에 걸친 진행 이유없이 정지하는 차량 등 음주운전을 탐지할 수 있는 가이드를 배포했다. 이 지침에서는 과거 같은 차단식 일제단속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유흥가 밀집지역 통행이 한산한 도로 등에 대해서는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일선 경찰서나 파출소에서는 이같은 지침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A파출소장은 "간선도로에서 진행중인 차량의 음주여부를 육안에 의지해 확인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유흥업소 밀집지역 등 단속 경찰관이 근접거리에서 냄새라도 맡을 수 있는 2차선 이하 이면도로에만 단속반을 파견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B경찰서 서장은 "차단이 가능한 이면도로에서는 차단식 단속을 허용하고 있지만 상습적인 정체구역에서는 시민들의 항의가 우려돼 옛날 같은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단속 실적이 줄어들면 상관으로부터 좋은 얘기를 들을 리 없는 교통 경관들은 새 방식으로 적발건수가 줄고 있는데 대해서 불만이다. 서울 C경찰서 교통지도계장은 "예전에는 단속을 통해 하룻밤 5∼6건의 음주운전을 적발했는데 요즘은 단속실적은 전무하고 접촉사고 등을 조사하다 음주사실을 추가로 발견하는 정도"라며 "이러다 대형 음주사고가 급증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기고
경찰이 그동안 음주단속을 위해 취해온 일제 검문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다. 때문에 일제단속을 지양하고 선별단속 위주로 바꾼 이번 조치는 경찰이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 취한 업무혁신 사례의 일환으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제도를 바꾸기 전에 부작용을 예상치 못한 점은 아쉬운 일이다. 단속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완이 필요한데, 그것은 대부분 경찰의 사전 준비에 관한 사항이다.
우선 단속에 임하는 경찰은 충분한 교육과 경험을 통해 음주용의차량을 선별해 내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번처럼 사전교육 없이 지침에 의존하면 실제 단속현장에선 시행착오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단속을 위한 과학장비도 확충해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경찰의 육안관찰이 가져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로상의 장애물에 대한 운전자의 반응을 감지해서 음주용의차량을 가려내는 감지장치 등을 보급하고 있다.
다음은 단속여건이 불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 외국의 경우 대부분의 도시가 술을 마실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고 시간대도 심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어 단속이 용이하지만 우리의 경우 단속의 공간·시간적 범위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음주운전자와 이를 방조한 술집 주인을 쌍벌로 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음주운전 행위 개시 이전에 자체 시정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의식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음주운전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처벌시 사회봉사명령제 등을 적극 활용하며, 단속방식의 변화가 음주운전에 대한 관용정책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등 단속에 앞서 운전자의 의식개선에도 주력해야 한다.
박 용 훈/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경찰청 경찰혁신위원회 교통부문 위원
■음주운전단속 외국선
차단식 일제 단속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권위주의적인 교통정책'. 선진 외국에서는 거의 예가 없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일상적인 순찰활동 과정에서 음주운전자를 적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은 순찰근무자들이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타고 방범·교통 활동을 벌이다 음주 징후가 있으면 단속을 벌이는 정도이다. 경찰청 김성국 교통안전과장은 "일부 주에서는 사전예고를 통해 간선도로 등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크리스마스 등 연말 휴가철에 국한된다"고 말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대대적인 음주단속은 없다.
일본의 경우 간선도로를 막는 차단식 단속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제단속을 할 때는 꼭 사전홍보를 하고 단속지점도 홍보효과가 큰 번화가 등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의 일제단속은 김영삼 정부 초기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1998년 음주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가 1,113명으로 피크를 이루자 경찰당국이 나서 음주단속을 강화했고 일제단속이 연중, 전국적으로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간선도로 차단식 단속에 대한 인권침해 시비와 교통정체 불만이 쏟아진데다 지난해 음주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891명으로 줄어 이번에 전면적인 손질을 하게 됐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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