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진보성향 의원 7명이 고영구 국정원장 사퇴 권고안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잠재해 있던 이념갈등이 표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들은 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소속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권고안을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법안이나 결의안을 제출할 때 보관해 온 의원들의 서명·날인을 첨부하는 게 관례라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보수 일변도의 당 운영방식에 반기를 든 것으로 볼 수 있다.이들은 "당이 과거 냉전시대의 극우 수구노선으로 회귀하고 있다"며 "이는 당의 환골탈태와 쇄신을 바라는 지지층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행동이 어떻게 수습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당 내외에 미칠 파급효과는 두 측면에서 짚을 수 있다. 우선 당의 개혁을 주장하는 소장파 의원들이 보조를 맞출 경우 진행중인 당권레이스에 영향을 주면서 당의 정체성 논란을 가열시킬 것이다. 또 민주당의 신당 논의와 맞물릴 경우 정치권 재편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지도부 쪽은 "당론을 따르지 못하겠다면 당을 떠나야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당의 이념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들어 "정체성이 같은 정당으로 가는 게 옳다"고 노골적으로 탈당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의 이념적 갈등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가장 큰 이유로 원내 절대 과반인 153석을 확보한 한나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크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과거에는 이회창 총재의 장악력에다, 대선 승리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러하지 못하다는 점도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념적 갈등 양상은 정치권은 물론 이념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는 사회 각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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