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프리드먼 지음·김태우 옮김 까치 발행·1만 5,000원
남성 성기의 역사라니, 별 해괴망측한 책도 다 있군. 이런 생각과 함께 약간 낯 부끄러운 상상으로 얼굴을 붉히면서 슬그머니 이 책을 펼쳤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전혀 야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문기자 출신의 미국 작가 데이비드 프리드먼이 쓴 이 책은 남성 성기라는 특별한 신체기관을 바라보는 눈이 서양 역사에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차분하게 살피고 있다.
중세 서양의 기독교 세계에서 음경은 '악마의 막대'였다. 초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음경은 죄의 대가이자 죄의 저주이고, 죄의 표시"라며 가장 타락한 신체기관이라고 가르쳤다.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몰려 화형 당한 여자들은 '악마의 막대'를 경험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반면 고대 문명은 음경을 생명과 창조의 힘으로 경배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도 그랬다.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 축제 때 꼭대기를 금 별로 장식한 거대한 음경을 받쳐들고 행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아테네의 식민지와 동맹국들이 이 축제에 바친 공물도 음경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영향으로 음경은 더 이상 자랑스럽지 못하게 됐다. 인본주의가 꽃핀 르네상스 시대도 그런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해 남자의 누드 조각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피렌체 시민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해야 했다.
이 책은 음경의 생리·해부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사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인체 구조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오늘날 비아그라의 발명으로 음경이 '터지지 않는 풍선'이 되기까지, 음경이 종교적 해석의 굴레를 벗고 의학적 탐구 대상으로 발전하기까지의 구구한 내력을 들려준다. 온갖 오해와 억측에 따른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와 흥미로운 사건들도 잇따라 등장한다.
음경이 크다는 이유로 흑인을 열등 동물 정도로 여긴 인종차별·제국주의적 시각의 오랜 뿌리,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 대상이 된 음경, 20세기 여권운동 속에서 정치성을 획득한 음경 등도 다루고 있다. 지은이는 책의 마지막 장을 비아그라를 비롯한 발기불능 치료의 역사에 할애하고 있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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