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비밀송금 의혹에 드리워진 베일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추측만 난무했던 송금경위와 관련, 외환은행 백성기 전 외환사업부장의 진술로 '국정원 송금 주도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대북송금 경로는 이번 사건의 실체에 근접하기 위한 핵심포인트 중 하나로 꼽혀왔다. 환전 및 송금과정에서의 국정원 개입 정도에 따라 대북송금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2,235억원의 수표배서자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의혹만 있었을 뿐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밝힌 '환전편의'의 구체적 내용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백씨 주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환전편의뿐만 아니라 송금과정 전반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 현대상선은 사실상 배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백씨는 "통상적인 국정원의 해외송금 방식으로 송금이 이뤄져 당시 현대상선이 관련됐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는 국정원 관련계좌를 통해 대북송금이 이뤄졌음을 의미하며 "환전편의만 제공했다"는 임 전 원장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송금을 주도한 사실은 또 대북송금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정상회담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부랴부랴 산업은행 대출이 이뤄지고 이 돈을 국정원이 받아 송금하는 과정은 결코 정상적이라 말할 수 없다.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우리가 만져보지도 못한 돈"이라며 대출상환을 거부했던 이유가 드러난 셈이다.
마카오에 있는 북한관련 단체로 돈이 넘어갔다는 것 또한 새로 밝혀진 사실이다. 돈의 최종 안착지와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자금관리인인 조광무역 박자병 대표의 계좌로 넘어갔다는 설 등이 지금까지 제기됐으나 백씨는 "조광무역은 아니고 마카오에 있는 북한관련 단체"라고만 확인했다.
수표 입금 및 배서자가 국정원 직원이고 국정원 계좌를 통해 대북송금이 이뤄졌다는 진술을 확보함에 따라 향후 특검 수사는 현대 상선에서 국정원으로 돈이 넘어가게 된 과정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수표배서자를 비롯, 송금에 관계된 국정원 관계자들의 소환 조사가 불가피해 졌다. 이와 관련, 김보현 3차장이 임 전 원장에게 현대측의 환전편의 요청을 보고했고 임 전 원장은 최기백 당시 기조실장에게 실무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검팀은 이르면 내주 초부터 국정원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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