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의 논리를 '말없이' 지켜보다, 마지막에 "누가 옳다"는 한 마디만 하고 나무 망치를 두드리는 사람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판사들이 확 달라졌다."SK글로벌의 해외분식이 3조 4,000억원으로 나와 있는데 맞습니까?"(SK공판, 김상균 부장판사) "휴대폰 도청은 가능합니까? 만약 불가능하다면 피고인은 왜 굳이 통화를 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까?" (국정원 도청의혹 공판, 성수제 판사) "가족들이 추징금은 대신 주지 않습니까? 일반인은 벌어서라도 빌려서라도 내는 것이 추징금입니다."(전두환 재산명시 공판, 신우진 판사)
최근 서울지법에서 열린 여러 공판에서 판사들의 '활약'은 눈이 부시다. 미심쩍은 부분에 대해선 피고인은 물론 검사까지 긴장할 정도로 송곳질문을 해댄다. 대법원도 올 해 들어 공판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며 판사들의 공판 개입을 적극 독려하는 추세다.
판사들이 검찰기록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눈과 귀'로 사건을 접하려 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공정하다는 법정에서도 힘의 논리는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선임할 돈이 없는 피고인은 항변 한번 제대로 못하고 , 엄청난 돈을 들여 거물 변호인을 선임한 힘있는 사람들은 기기묘묘한 논리로 사건을 흐린다. 오죽하면 재판은 '거짓말 경연대회'라는 비아냥까지 나왔을까. 판사의 개입이 겉 모양만 '공정했던' 재판의 허상을 벗어버리고 법정에서 실제적인 '힘의 균형'과 '사건의 실체 접근'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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