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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相生과 相剋 사이

입력
200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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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만 교수의 국정원 기조실장 임명으로 정국이 시계불량 상태에 빠졌다. 자존심 상한 야당이 '국민과 국회를 무시한 선전포고'라며 총력투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대화고 타협이고 모두 물 건너간 형국이다. 남은 것은 상생이 아니라 상쟁이요, 공존이 아니라 공멸이다. 그 동안 야당과 상생의 정치를 유달리 강조해 온 노 대통령의 평소 기조로 보면 서 교수문제는 일탈이 분명하다.무엇이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강경기조로 돌아서게 했을까. 국정원 개혁의 중압감 때문일까. 아니면 후보시절부터 자신을 도와 온 서 교수와의 정리(情理)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고영구 원장의 간곡한 천거 때문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건데 더 이상 야당의 공세에 안 밀리겠다는 오기인사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념적 성향에 대해 말이 많았던 서 교수의 기용이 왜 노 대통령에게 건곤일척의 승부수가 되어야 했는지 쉽게 이해가 안 된다.

사실 고 원장 임명 후 야당 분위기는 '인사권자가 밀어붙였는데…'하는 체념 조였다. 다만 이념적 성향을 문제 삼았던 서 교수 기용만 않는다면 하는 것이 사실상의 전제조건 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야당의 마지막 자존심마저도 무시됐다. 노 대통령도 야당생활을 해 보았지만 명분 잃고 체면까지 구겨진 상황에서 야당이 택할 길은 명백하다. 아마 노 대통령이라면 의원직에 미련을 버렸거나 명패라도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았겠는가.

원내 소수정권의 불가피한 선택이긴 했겠지만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상생의 정치를 강조했다. 그래서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야당대표를 청와대로, 혹은 청남대로 불러 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는 야당 당사로 직접 찾아가는 열의까지 보였다. 문제는 우리가 보기엔 더 이상 밀려서는 안되겠다는 각오를 해야만 할 만큼의 사단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난 정권 때처럼 출범 첫날부터 야당이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막아 서리체제로 반년이상을 버텨야만 했던 파행도 없었고, 소위 '빅 4'청문회도 그런 정도면 무난했다. 국정원장 청문회도 국회가 의견을 말하도록 돼 있는 절차에 따라 '부적격' 의견을 냈을 뿐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내정자에 대한 사상검증이나 업무능력 평가는 국회의 당연한 직무이자 권리다.

노 대통령은 정보위가 고 내정자에게 낡은 색깔론을 씌웠다고 섭섭해 했지만 국정원장이란 자리는 그보다 더한 이념적 검증을 받아 마땅하다. 흔히 정보기관의 장을 '스파이 두목(spy chief)'이라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런 사람에게 그의 이념적 현주소나 사상적 좌표를 아무리 따진다 해서 섭섭해 할 일이 아니다. 만약 그런 것이 싫거나 귀찮은 사람이라면 직위를 포기토록 하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국정원이 해야 할 일은 정보기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정원 개혁의 알파요, 오메가는 공정한 인사와 간첩 잡는 일, 첩보전에서의 우위를 회복하는 일 등이다. 이런 일을 하는 데 굳이 야당과 심지어 여당 일부에서조차 반대하는 사람을 고집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서 교수같이 우수한 사람은 다른 요직에 기용하면 된다. 지금 노 대통령은 작은 것을 지키려다 더 큰 것을 잃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세간엔 김대중 정권이후 미국과의 정보교류가 원활치 않은 점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는 정부가 자문해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전직 국정원장이 대북 비밀송금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출국정지 당한 상황이 웅변하지 않는가. 자신들의 국회에서 이념성을 의심 받은 새 국정원 팀에게 과연 미국 등 우방국들과 활발한 업무공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굳이 정보기관장과 그 조직마저 노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음지에서 국익지상주의로 일하는 이들이 오히려 보다 보수성향의 인사들이면 어떤가. '셀 코리아(sell korea)'는 북한 핵이 아니라 대미공조 불안 때문이라는 세계적 신용평가 기관들의 지적이 귓전을 때린다.

노 진 환 주필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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