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 출전해 금상을 받았던 서울대 물리학부 1학년 박준하(18)군은 최근 미 MIT로부터 입학허가서를 받고 자퇴원을 냈다. 박군은 "물리학자로서의 장래를 위해 서울대가 아닌 MIT를 택했다"고 말했다. 박군과 함께 국제 물리올림피아드에서 동시 금상 수상 후 수시모집을 통해 올해 서울대에 입학했던 다른 학생 2명도 역시 미국대학 진학을 위해 자퇴했다.서울대 이공계가 재학생들의 자퇴나 휴학 등이 급증하면서 공동화 현상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군처럼 미국 명문대진학을 위한 자퇴와 의대진학을 위한 휴학·자퇴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1일 서울대에 따르면 군입대를 위한 휴학을 제외하고 의대행 등을 위해 휴학한 자연대와 공과대 신입생은 기계항공공학부 17명, 전기·컴퓨터공학부 10명, 화학부 8명 등 71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신입생 5명은 아예 자퇴를 한 상태다. 이처럼 신입생 사이에 '의대 재수' 열풍이 확산되자 대학측은 이들 휴학생이 결국 학교로 돌아오지 않아 결원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화학부 박종상(51) 교수는 "과에 적만 걸어놓고 나오지도 않으면 지원했다 떨어진 학생들은 뭐가 되느냐"며 "기초 학문을 지켜온 연구자이자 교수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참담해했다.
신입생 외에도 자퇴를 한 재학생도 상당수에 달한다. 공대의 경우 이번 학기 미등록 제적생을 포함, 학부생 100명이 자퇴하는 등 석·박사 과정생을 포함한 이공계 전체 자퇴생 수가 지난해 107명에서 올해 18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입대를 위한 휴학생을 제외한 일반 휴학생만 지난해 768명에서 올해 924명으로 증가, 1,000여명이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올 대학원 전기모집에서 자연대와 공대가 각각 정원의 53.7%, 64.0%에 불과한 충원율을 기록하는 등 국내 기초과학 연구의 심장부였던 서울대 실험실은 이미 인력 부족으로 '적막강산'이 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생명과학부 세포생물학 연구실의 안태인(56) 교수는 "IMF 이전까지만 해도 10명이 넘었던 학생들이 현재 박사과정 1명, 석사과정 4명 등 절반으로 줄어 정상적인 프로젝트 수행이 힘들 정도"라며 "국가에서 장학금 신설을 통해 해외유학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국내파 연구원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을 구상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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