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직전 누이동생과 조카를 일곱이나 부양하던 날품팔이 장발잔이 배고픔 끝에 겨우 빵 한 조각을 훔쳤는데도 3년이란 형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 법원이 너무 가혹했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무죄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실정법 아래서 판단해도 장발잔은 분명 절도범이다. 무죄가 될 수는 없다. 다만 구속은 너무 가혹하므로 훈계방면이나 기소유예가 적당하지 않은가 싶다.최근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에선 장발잔을 도둑으로 볼 수는 없고, 오히려 그를 방치한 사회가 잘못한 것이므로 무죄라고 몰고 가는 듯한 '센티멘탈 트렌드'가 엿보이는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총련 수배학생들 중 학교 한구석에 숙식하는 생활 속에서 질병을 앓고 있거나, 경찰의 감시를 받는 와중에 교생실습까지 하고 있는 이들을 보노라면 대통령의 언급처럼 참으로 안타깝다. 법무장관도 한총련에 대해선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은 한총련 수배학생들은 여전히 검거할 수 밖에 없다고 의견을 달리 하니 국민들 입장에서 의아할 따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거나 기존 대법원 판결이 바뀌어야 해결될 문제이다. 그전까지는 분명 실정법 위반이지 무죄가 될 수는 없다. 다만 관용을 베풀 여지만 있을 뿐이다.
이번 석가탄신일 특사에 포함된 사람들 중엔 기존 사법부에서 엄벌에 처해졌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지만 그렇다고 과거 이들의 행위가 합법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기존의 법질서와 당시 수사·사법기관의 판단이 무조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시대 조류의 변화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나 동네 축구에도 규칙이 있는 법인데 어느 정도 원칙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참여정부의 각종 개혁 물결엔 긍정적인 면이 물론 많다. 그렇지만 개혁이라는 미명아래 법을 무시하고 임의로 정책을 바꾼다면 개혁의 의미는 퇴색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인치로서 현정부가 개혁하려고 하는 각종 제도와 병리를 잉태했던 과거정권을 답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악법은 고쳐져야 한다. 그렇지만 고쳐질 때까지는 일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개혁이다.
/최 용 석 변호사 오세오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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