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때로는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아 보일 때가 있다. 지난해 5월 신문 사회면에는 '간암 사망자 유족과 위암 환자가 각각 산업재해 소송을 제기했는데 간암 사망자 유족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 받아 소송에서 이겼고, 위암 환자는 패소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상한' 판결 이었지만 변호사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법원은 업무가 질병의 원인이 됐느냐를 따진다. 업무로 인해 질병이 생겼을 경우 법원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냐, 혹은 기존의 질병이 과로 등으로 악화된 것이 의학적으로 입증됐느냐를 따진다.질병과 업무상 재해
암은 사망률 수위를 다투는 질병. 그러나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에서 암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주는 경우는 진폐증으로 인한 폐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곤 없다. 폐암도 주된 발병원인이 담배로 알려져 있어 작업환경이 유독 물질 등에 노출된 경우 등이 아니면 인정받기 어렵다. "야근 등 육체적 격무나 스트레스가 폐암의 발병이나 악화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일관된 판례. 위암 역시 마찬가지다. 법원은 "과로와 불규칙한 식생활 등이 위염을 악화시키거나 위암으로 발전하는 요인이 되는지 여부는 아직 의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판결하고 있다. 백혈병도 방사선 기사 등 직업적 특수성이 있을 경우를 제외하곤 인정해주지 않는다. 반면 간암의 경우는 어느 정도 돌파구가 열렸다. 법원은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간질환은 과로나 스트레스로 악화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특히 '영업직' 과 같이 업무로 인한 술자리에 시달리는 직업이나 지위를 가진 사람이 간질환에 걸릴 경우도 '구제 대상'이 된다.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뇌질환 등은 암에 비해 비교적 업무와의 관련성(과로와 스트레스)을 폭넓게 인정해 준다.
산재 재판부 출신 한 변호사는 "실제 과로가 암을 유발하는 것인지 과학적으로 입증이 안됐다는 것일 뿐이고 한의사들은 오히려 암과 백혈병의 제1 원인으로 과로와 스트레스를 꼽는다"면서 "다른 암들도 길을 터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돌연사나 청장년 급사 증후군에 대해선 법원은 비교적 관대한 편. "과로 이외에 다른 사망의 원인이 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업무상 과로와 신체적 요인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등에 따른 자살도 판례상 인정된다.
통근제 논란
산재 재판의 쟁점중의 하나는 '출퇴근 중 재해'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법원은 '회사 통근버스를 이용하다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해준다. 그러나 자가용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면 안된다.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공무원의 경우 '통근 중 사고'는 개인차량이든 대중교통이든 가리지 않고 '공무상재해'로 인정해 준다. 모순된 판결처럼 보이지만 이유는 있다. '공무상 재해'는 일반 산재와는 달리 공무원 연금관리공단에서 '별도 재원'으로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 관계자는 "경제활동인구의 64%가 급여생활자인데 출퇴근 사고를 포괄적으로 인정해 줄 경우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하급심에선 기존 판례를 완화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나오고 있다.
/이태희기자 taeheelee@hk.co.kr
산재 전문 변호사들은 일반인들이 산업재해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한다. 산재는 말그대로 '보험'이기 때문에 아는 만큼 힘이 된다.
산재법상 근로자를 1인 이상 사용하는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산재 보험에 가입하도록 돼있다. 사실상 모든 근로자가 해당되는 셈. 민사상 손해배상과는 달리 회사측이 과실이 없더라도 업무로 인한 재해가 인정되면 언제든지 청구할 수 있다. 또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회사가 없어져도 폐업한 회사에서 일할 당시 노출된 유해물질에 의해 질병이 생겼거나 이때 당한 부상이 재발했더라도 구제 받을 수 있다. 퇴직후에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산재가 발생하면 회사가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라는 생각하지만 방심은 금물. 오히려 회사측이 산재 보험료 인상,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처벌 등의 부담감으로 산재처리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변호사들은 지적한다. 특히 근로자들도 경미한 사고는 회사와의 관계를 고려해 산재처리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지만 산재로 처리하면 재발시 재요양을 받을 수 있고, 장해 보상도 쉽게 받을 수 있다.
한편 산재가 발생하면 사고 현장 사진, 사고 목격자, 목격자 진술서 등을 확보해 두어야 하고, 사업주와의 민사 합의는 치료를 마친 뒤 장해급여를 받은 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변호사들은 충고한다. 또 진단서나 요양 급여 청구서 등 관련 서류는 모두 복사해 보관해 두는 것이 소송에 대비해 현명하다. 응급치료와 기타 비용 지출이 있으면 영수증을 잘 보관했다가 나중에 청구하는 것이 좋다. 산재 보상청구는 3년 이내에 해야 한다.
/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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