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년 5월2일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구입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토지 매매라고 할 만한 이 거래는 오늘날의 프랑스 입장에서 보자면 나폴레옹1세의 모든 치적을 흐릿하게 할 만한 실책이었다. 풍부한 지하 자원과 빼어난 풍치를 갖춘 82만8,000 제곱마일의 기름진 땅을 고작 1,125만 달러에 넘김으로써, 다시 말해 1에이커 당 3센트 이하의 값에 팖으로써, 프랑스 황제는 북아메리카의 앵글로색슨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반면에 이 거래는 오늘날 미국 주류 사회의 처지에서 보면 토마스 제퍼슨이 대통령으로서 이룩한 최대의 치적이었다.이 거래를 통해 아메리카 합중국은 영토를 단숨에 두 배로 늘렸다. '아니, 루이지애나가 그렇게 크단 말야?' 하고 되묻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영토는 오늘날의 루이지애나주만이 아니라 미주리, 아이오와, 아칸소, 사우스다코타, 노스다코타, 네브라스카, 오클라호마주 전체와 캔자스, 와이오밍, 몬태나, 미네소타, 콜로라도주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드넓은 프랑스 영토의 이름 루이지애나는 '짐이 곧 국가다'라는 발언으로 유명한 '태양왕' 루이14세에게서 따온 것이다.
이 영토의 핵심부였던 오늘날의 루이지애나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풍취가 많이 남아있다. 재즈의 발상지로 유명한 루이지애나 최대의 도시 뉴올리언스는 '새 오를레앙(프랑스 중북부의 도시)'이라는 뜻이고, 주도 배턴루지(바통루주: Baton Rouge)는 프랑스어로 '붉은 막대'라는 뜻이다. 루이지애나의 프랑스계 백인들은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과의 혼혈에 여느 백인들보다 덜 적대적이어서 '크리올'이라고 불리는 혼혈인들을 많이 낳았다. 루이지애나가 남부의 주 가운데는 그나마 덜 인종주의적이었다는 뜻이겠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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