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정부 구성을 놓고 힘겨루기를 벌였던 마흐무드 압바스 총리의 새 내각이 29일 자치의회의 인준을 받아 공식 출범했다. 미국 등 서방이 공개 지지해온 압바스 정부가 등장함으로써 31개월 간 계속돼 온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유혈분쟁 수습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위한 평화협상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미 백악관은 내각 인준이 처리된 직후 "새 팔레스타인 정부와 협력하게 되기를 바란다"며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유엔 등이 작성한 팔레스타인 평화정착 방안인 '로드 맵'도 30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측에 각각 전달됐다. AFP 통신은 로드 맵이 3년 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골자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압바스 총리로 협상창구 단일화
새 내각 출범은 압바스 총리가 팔레스타인 정부를 대표하는 유일한 대외창구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라파트의 협상의지에 의구심을 표시하며 일체의 협상을 거부해온 이스라엘 정부는 조만간 압바스 총리와 유혈분쟁 종식을 위한 양자 회담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압바스 총리는 이날 총리 수락연설에서 "유대인들이 과거 겪은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며 이스라엘을 의식한 지극히 이례적인 발언을 해 앞으로 대 이스라엘 협상에 적극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또 폭력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보안군을 제외한 모든 극렬단체의 무기소유를 금지하겠다고 밝혀 이스라엘이 요구해온 사전 조건을 전폭 수용했다.
그러나 압바스 총리가 자치정부를 대표하게 됐다고 해서 그가 협상력까지 부여 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 이스라엘 온건파라는 성향이 자치정부 내 강온파의 대립을 심화시켜 정국혼란은 물론 내전까지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압바스 내각이 미국에 의해 탄생한 꼭두각시 정부라는 비난도 나온다. 총리 인준 이전부터 압바스의 대 이스라엘 온건정책에 대해 경고를 해 온 하마스, 이슬람지하드 등 과격 무장단체들은 무기소유를 금지하겠다는 압바스의 발언에 곧바로 거부의사를 밝혔다. 하마스는 이날 "우리 자신과 영토를 지키기 위해 무기소유는 필요하다"며 무장투쟁을 계속할 것을 천명했다. 내각 인준 후 반나절도 안돼 이스라엘 텔아비브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터진 자살폭탄테러도 압바스 총리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크다. 로드맵에 대해 수용의사를 밝힌 팔레스타인과 달리 일부 수정 및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의 태도도 부담이다.
아라파트의 위상
압바스 총리가 권력분점을 통해 내무장관을 겸임하고 치안권을 장악했지만 아라파트의 정국 장악력은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압바스가 정부 내에서는 상당한 권한을 확보했지만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전무한 데다 국민 지지도도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평화협상의 결정적 열쇠가 될 무장단체들의 행보와 관련해서는 아라파트와 달리 이들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어 그의 '말발'이 어디까지 먹힐지 장담할 수 없다. 아라파트 수반이 이끄는 최대 정파 '파타 운동'은 여전히 내각과 의회에서 막강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고 하마스, 이슬람지하드 내에도 아라파트의 추종세력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전문가들은 아라파트가 국제여론에 밀려 압바스의 등장을 허용했지만 의회와 무장세력을 배경으로 한 폭 넓은 국정장악력을 바탕으로 자치정부를 원격조종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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