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타니 겐지로 지음·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발행·8,500원
하이타니 겐지로(灰谷健次郞·69)는 교육을 다룬 청소년 소설로 일본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지가를 올리고 있는 작가이다. 지난해 정식 계약으로 국내에 소개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양철북 발행)는 출간 9개월 여만에 10만 부 가까이 팔렸다. 1980년대 중반 몇 군데 국내 출판사에서 해적판을 냈을 때만 해도 30만 권은 족히 나갔다.
책은 국내 한 출판사가 중국 옌볜(延邊)에서 널리 읽히는 것을 보고 들여온 게 계기였으니까 중국에서는 하이타니 바람이 진작에 거셌다. 정식 계약으로 중국서 나오는 하이타니의 책은 계약금만 1억 엔에 이를 정도다.
이번에 번역돼 나온 '모래밭 아이들'도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하이타니의 교육관이 쪽마다 배어있는 책이다. 8년 동안 해오던 방송 일을 그만 두고 친구와 함께 유기농 공동체를 차린 35세의 주인공 구즈하라 준은 다시 한 번 새로운 인생에 도전한다. 중학교 임시교사로 국어를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리를 구한 학교는 교사와 학생의 긴장이 이만저만 팽팽한 곳이 아니다. 특히 담임을 맡게 된 3학년 3반은 교사들이 하나같이 혀를 내두르는 문제 학급. 하지만 구즈하라 준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들기보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듣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구즈하라는 "아이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교사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교사들에게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금지 사항이 있으니까 문제가 생긴다" "학생들의 심지는 깊다"고 말한다.
책에는 지금 국내 교육 현실과 하나 다를 바 없는 문제 상황이 줄줄이 이어진다. 장발을 금지하는 교칙에 저항해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 따돌림과 멸시로 학교와 교사를 불신하는 학생…. 구즈하라는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사이에 생긴 그 상처들을 되도록 아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뜻을 받아 들이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애쓴다.
대학 졸업 후 17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작가 하이타니의 경험이 적잖이 녹아 있는 책이다. 소설은 끊임 없이 이어지는 구즈하라와 아이들의 이야기, 또 동료 교사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힘있게 전개된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라"는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어떤 자세로, 어떤 말로 청소년들과 대화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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