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흩뿌렸지만 제 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열기는 뜨거웠다. 관객들은 개막작 '여섯 개의 시선'의 깊이 있는 시선과 재치 있는 감각에 박수를 보냈다. 특히 독창적 스타일과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와 한국사회의 외모 강박증을 통쾌하게 웃음으로 날려 버린 임순례 감독의 '그녀의 무게'에 갈채를 쏟았다. '자유 독립 소통'이라는 올 영화제의 주제를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여섯 감독은 어떻게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한국 영화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들. '그들도 우리처럼'의 박광수 감독을 비롯해 '세상 밖으로'의 여균동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찬욱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 감독은 각 단편을 5,000만원에 불과한 제작비로 완성했다. 박찬욱 감독의 말대로 "감독은 자기 돈을 털었고 스태프는 보수도 없이 봉사를 했다."
제작을 지휘한 이현승 감독은 "교훈적 이야기를 내세우다가 자칫 방향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스러웠다"면서 "인권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재미 있고 볼만한 영화를 찍으려 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임순례 감독도 "홍보나 선전이 아니라,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려 했다"고 보탰다.
여섯 감독들은 각자 준비하는 영화 일정에 쫓겨 허겁지겁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방아쇠'를 준비하느라 포기하고 싶었다는 박광수 감독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아쇠' 촬영이 연기돼 '방아쇠' 출연진 지진희와 정애연과 함께 '얼굴값'을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순례 감독은 캐스팅할 시간이 일주일 밖에 안됐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의 무게'를 한 건, (몸무게가) 저랑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죠." 임 감독은 작품의 엔딩 크레딧 장면에 출연해 폭발력 있는 웃음 연기까지 선보였다.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면 꼭 용모단정이라고 써 있잖아요. 내가 취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내가 출연하는 거에 대해 말이 있었지만 주인공 설희의 무게가 곧 나의 무게라는 생각에…."
여섯 개 작품 중 가장 모호한 수수께끼 같은 작품을 들고 나온 정재은 감독에게는 유독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오줌 싼 아이가 자기가 아는 아저씨에게 소금을 얻으러 간다는 이야기 흐름 그대로 봐주시면 돼요. 성범죄자 신상공개의 봉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아이가 오줌 싼 뒤 소금 얻으러 다니며 창피함을 느끼는 방식을 연상시키지 않나요." 정 감독은 ㅁ자 형 폐쇄된 아파트를 찾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녔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허락을 받기 위해 가가호호 아파트 주민들을 찾아 다니며 촬영 협조를 요청해야 했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이 전주 이외의 다른 곳에서 이들 작품과 만나는 데는 넘어야 할 고비가 많다. 개봉 계획은 잡고 있지만 상업 영화가 아닌 탓에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는 것. 이현승 감독은 "마케팅 비용이 책정이 돼 있지 않아 힘들겠지만 영화사관계자들이 흥행을 점쳐 희망을 품고 있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여섯 개의 시선'으로 활짝 문을 열어 젖힌 전주영화제는 4일 '파 프롬 헤븐'으로 막을 내린다.
/전주=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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