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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길위의 이야기/관점1 ― 흑립백립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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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길위의 이야기/관점1 ― 흑립백립 사건

입력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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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서원(書院)은 각각 자신이 속한 당(黨)의 선비들이 모이는 장소이고 자신들의 당에 속한 선현들을 배향함으로써 일체감과 정체성을 고양하는 곳이다.어느 지역에 대표적인 서원 두 곳이 있었는데 한 곳에는 남인들이, 한 서원에는 서인들이 주로 모였다. 조선 후기 어느 해에 돌연 임금의 인산(因山)이 났다. 동인들은 모두 격식에 맞는 흰 갓을 쓰고 서원에 나와 한성을 향해 망곡(望哭)을 했는데 서인들은 평소에 쓰는 검은 갓을 쓴 채 엎드려 망곡을 했다. 그렇게 인산을 지내고 나서 두 서원에서 상대의 당을 공격하는 공론이 일었다. 문제는 갓이었다.

"어떻게 망극한 국상을 당하여 망곡을 하러 나오면서 보통 때 쓰는 검은 갓(黑笠·흑립)을 쓰고 나올 수가 있는가. 예의범절에 그렇게 어둡더란 말인가."

"저 서원에 있는 자들은 국상이 나기를 얼마나 기다렸으면 국상이 났다는 말이 전해지자마자 준비해놓은 흰 갓(白笠·백립)을 쓰고 나왔는가. 우리들은 나랏님이 오래 사시기를 바랬기 때문에 흰 갓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노라."

이것이 나의 향토에 전해지는 '흑립백립 사건'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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