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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박물관은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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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박물관은 지겨워

입력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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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 모건스턴 글· 장 클라베리 그림 비룡소

나들이하기 정말 좋은 계절. 부부는 오랜만에 알찬 나들이를 계획했다. 주제는 '역사기행'. 고즈넉한 운현궁 담을 따라 걷다가 인사동에 들러 옛 정취가 물씬 나는 물건들을 구경하고 경복궁으로 가야지. 근정전 앞에 늘어선 품석을 보며 아이들 인생 설계도 하게 하고,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왔던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찾아 보리라. 참, 국립민속박물관도 경복궁에 있지. 중학동, 소격동 같은 경복궁 주변 동네 이름의 유래만 살펴도 역사가 살아 숨쉬는 것 같을 거야.

그러나 아이들은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부모의 유혹과 강권에도 굴하지 않는 아이들을 집에 두고 부부만의 오붓한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박물관은 지겨워'의 주인공인 '나'는 박물관이나 전시회, 유적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보면 화가 치민다. 나는 '문화중독증'을 가진 부모 덕분에 파리와 유럽의 많은 박물관에 가야 했다. 엄마 아빠는 훌륭한 미술품이 나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너무 싫다. 그래서 울거나 발을 구르며 내 감정을 표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어서 나름대로 박물관에서 즐기는 방법을 개발했는데 그건 넓은 바닥에서 미끄럼 타기, 계단 오르내리기, 관람객 관찰하기 같은 것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열심히 '옛날 물건 보관소'를 구경하러 다니기만 할 뿐, 우리 집 벽에는 누렇게 바랜 복제화밖에 없다. 그래서 엄마 아빠 모르게 '내 방 박물관'을 만들어 생일날 열기로 했다. 생일 날 아침, 박물관에나 가자는 내 말에 엄마 아빠는 얼마나 놀라던지.

드디어 '내 방 박물관'의 개관 시간! 구경하던 엄마 아빠의 긴장했던 표정이 점점 부드러워진다. 무엇을 전시했냐고? 잘 때 덮던 담요, 눈알과 팔다리가 하나씩 달아난 인형, 내가 그린 박물관 그림, 살아 있는 화가의 전시회 포스터, 박물관 갈 때 신었던 운동화와 겉옷. 역시 예술은 사람을 즐겁게 하나 보다.

역사기행에서 돌아오면서 부부는 걱정했다. 우리 아이들은 어떤 감성을 가지고 있으며 나중에 회상할 추억은 있을까 하고. 집에 와서 보니 아이들은 옛날 게임 사이트에서 수퍼 마리오를 하며 추억에 잠겨 있었다.

그래, 거실을 '가족 박물관'으로 꾸미는 거야.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그러나 어쩌랴. 몇 번의 이사와 알뜰 정신의 발로로 나눠 쓰고 바꿔 쓰느라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은 것을. 하는 수 없이 사진첩을 펼쳐서 각자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기억은 우리가 가진 무형의 전시품이었으므로.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비록 처음엔 지겨워 했지만, 결국은 자식을 문화인으로 키우고자 하는 부모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닐까.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애들. 싫어해도 박물관이니 미술관, 음악회에 데려가야만 하나? 다시 갈등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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