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에 걸터앉아 적진으로 돌격한다"이런 뻔한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마치 실제 상황처럼 쉽게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만화 말고 또 있을까.
임수(76·본명 임영의·林榮義)선생의 초기 작품이자 대표작이랄 수 있는 만화 '거짓말 박사'. 이 작품은 '만화적 판타지'를 기대한 초창기 독자의 욕구를 한 방에 충족시킨 명작이다. 장년층 이상은 소년시절에 접했던 유쾌한 거짓말 만화백서(漫畵白書)로 두루 기억하는 작품이다.
디자인을 전공했던 작가가 깔끔하게 다듬은 귀엽고 앳된 얼굴의 주인공 캐릭터는 한국전쟁이 막 끝났을 무렵 어린이들에게 잠시나마 '맑은 웃음'을 던져주었다. '거짓말 박사'는 1954년 창간된 만화잡지 '만화세상'(서봉재 발행)에 연재되다가 어린이 독자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폭발적 반응을 얻자 이듬해 단행본으로 나왔다.
단행본 표지에는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이야기"라며 '뮌히하우젠 원작(독일사람)'이란 설명이 적혀있다. 독일사람 뮌히하우젠(Karl Hieronymus Friedrich Baron von Munchausen)은 실존인물이었다. 러시아 기병대 대위로 터키전쟁에 두 번 참전했고 말년은 독일 하노버에서 사냥과 낚시를 즐긴 한량이었다. 그의 무용담과 사냥기, 모험담 등의 이야기는 온통 '뻥'으로 각색돼 후세 사람들에 의해 소설로 발표됐다. 1785년 영국에 망명한 독일작가 루돌프 에리히 라스페라에 의해 영어소설로, 다시 독일 시인 A. 뷔르거에 의해 이야기가 보태져 '뮌히하우젠 남작의 놀라운 여행과 무용담, 유쾌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던 것.
내용을 보면 포탄을 타고 적진 상공을 날아가 정탐을 한다든가 열기구를 타고 달나라까지 가기도 한다. 그리고는 지구의 활화산 불구덩이에 추락하기도 하고, 거대한 바다 괴물에게 먹히는 등 갖은 모험을 겪으면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악의 화신 술탄(Sultan)을 쳐부순다는 것이 이야기의 줄거리다.
발표 당시 '이단자 같다'는 평을 받았다는 게 작가의 회고.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우리 만화계는 사실적(寫實的)인 그림체의 역사소재 만화가 주류를 이룬 시절이었다. 이런 창작 환경에서 그야말로 서구적 분위기의 만화체 그림에 내용마저 황당무계한 거짓말투성이여서 매우 낯설었기 때문이다.
임 선생은 청소년기였던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일본만화 '노라쿠로 하사관'을 보며 만화가가 될 꿈을 세웠다. 이 만화는 '검둥개'가 주인공인 하사관으로 등장하는 명랑만화로 당시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였다. 신신백화점 미술부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54년 만화잡지 '만화세상'의 창간준비사원으로 스카우트된 후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57년에는 만화창작전문 '임수 프로덕션'을 만들었고 이후 '거인' '촤이나(차이나) 박' '위대한 인디언' 등으로 60년대 인기만화가로 군림했다. 90년대 이후 창작 후반기에는 성경소재의 만화창작에 전념, 만화를 통한 선교에 주력하고 있다.
/손상익·한국만화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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