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란 것은 다만 얼마 동안이라도 '당대 제일의 문장' 소리를 한번 들어보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수룩한 희망이기도 하고 외람된 희망이기도 했지만… 내가 바란 것은 '동안'이 아니라 고작 '당대'라는 이름의 '한때' 뿐이었으니까. 그럭저럭 세월이 흘렀다. 한때고 얼마 동안이고 간에 내가 들어봤으면 했던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세월만 그렇게 속절없이 보낸 것이다."그러나 그는 그렇게 속절없이 세월을 보낸 것 같지는 않다. 2월25일 62세로 작고했을 때의 그의 부음 기사에는 이름 앞에 '우리 시대의 문장가'라는 수식어가 놓여 있었다. '북에 홍명희, 남에 이문구'라고 부를 만큼 그의 문체는 아름다운 것이었고 한국 문학에서 독보적인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긴 산문 원고에서 "나는 내가 바랐던 것이 한갓 희망사항으로 그치고 말리라는 것도 애초부터 내다보고 있었다"고 적었지만, 그 바람은 희망사항이 아니라 이미 이뤄진 것이었다.
고인의 유고 산문집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바다출판사 발행)가 출간됐다. 그가 위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꾸준하게 써온 동시 66편을 모은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가제·창작과비평사 발행)도 뒤따라 곧 나온다. 그는 3년 전 산문집을 내고 싶다는 출판사의 제안에 기다려 달라고 대답했다. 그때의 약속을 내내 마음에 두었던 그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후배 문인에게 원고 뭉치를 주며 출판사에 넘겨달라고 부탁했다. 그 얼마 전에는 지난해부터 틈틈이 쓴 동시 원고도 출판사에 전했다.
2000∼2002년에 쓴 그의 산문은 따뜻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푸근하다. 표제 글 '까치 둥지가 보이는 동네'는 길조로 여겨져 온 까치가 박대 당하는 오늘의 상황을 한탄하는 내용이다. "포상금을 걸어서까지 잡아 없앨 수밖에 없는 날짐승이라면 사냥을 허락하기 전에 국조라는 허울부터 벗겨주는 것이 순서일 것"이라는 말에 가슴이 뜨끔하다가도, 작가의 안타까운 심정이 담긴 한 문장에 뭉클해진다. "본 사람은 봤겠지만 까치둥지가 안 보이는 동네는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었던 것이다." 신인 원고를 심사하면서 신선한 열기에 큰 기쁨을 느끼는 데다, 다감한 평론가 김치수씨와 단짝으로 신춘문예 심사를 맡곤 해 즐거움이 더욱 크다는 고인의 목소리는 진솔하고 훈훈하다. 무엇보다 맛깔스런 말 부림을 천착했던 소설가답게 말에 대한 엄정한 의식이 글 곳곳에서 빛난다. '풍년시름'(수입농산물 때문에 풍년이 들면 들수록 재미가 적어서 시름에 잠기는 것), '속박이'(겉은 번드르르하게 꾸미고 보이지 않는 속은 속임수로 채워서 출하하는 농산물), '물퇘지'(안 좋은 먹이를 먹여 품질이 낮은 돼지고기) 등 농촌의 '말농사'를 정리한 글을 읽다 보면 고인이 얼마나 우리말 쓰임새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저절로 헤아릴 수 있다.
고인이 동시집을 내는 것은 두 번째다. 그는 1988년 아들의 이름을 제목에 넣은 동시집 '개구쟁이 산복이'를 펴냈다. 문우인 평론가 유종호씨의 권유로 쓰기 시작한 그의 동시는 맑고 순하다. 예의 '이문구 문체'가 즐거운 가락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도 기꺼이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쉽고 재미있다. '내가 겨우내 꽁꽁 언 채/ 눈으로 목을 축이며/ 밭에서 견디는 것은/ 내년 봄에/ 노랑물감 같은/ 장다리꽃을 피우기 위해서지요./ 왜라니요./ 꽃을 피우지 못하면/ 살았다고 할 것이 없잖아요'('씨도리 배추'에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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