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연출 의도는 보이지 않지만 뜻밖에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영화, 뭐 이런 식으로 써주면 안되나.” 영화 ‘살인의 추억’의 제작자인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가 기자들에게 주문한 말이다. 물론 농담이다.영화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이 첫 시사회를 가진 날 평론가들과 기자들은 미열에 들떴다. 완성도와 흥행성을 두루 갖춘 영화가 나온 것 같았다.
차승재씨는 봉감독의 전작을 비롯, 실패한 느와르 ‘킬리만자로’, 남성동성애를 다뤄 흥행에서 박살이 난 영화 ‘로드무비’, 엽기발랄하지만 역시 처참한 흥행 실적을 기록한 ‘지구를 지켜라’의 제작자. 그러나 그는바로 이런 영화로 한국 영화의 장르 다양화에 기여한 제작자로 꼽혔다. 상업적인 영화 제작자가 갈채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돈 잃고, 작품 얻은 그 제작자를 칭찬했다.
물론 차승재씨가 ‘돈을 버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체질’이라거나‘흥행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서’, 그런 영화를 만들어온 것은 아니다. 돈 벌려고 만들었다가 실패한 영화도 많다.
그는 다른 제작자에 비해 흥행성과 작품성의 저울질에서 작품성의 무게를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았을 뿐이다. “난 조폭 흥행 영화 만들라고 해도못 만든다”는 그의 말은 겸양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맞는 말이기도 하다.
조폭 흥행 영화에 도전하는 사람은 많지만 성공 확률은 10% 남짓이다.
문제는 “정성 들여 만든 영화이니 제대로 써 달라”고 해도 시원찮을 제작자가 “작품 잘 만들었다는 말은 이제 됐으니…”라고 말을 꺼낼 수밖에없는 우리 영화계의 현실이다.
제작자가 “잘 만들었다”고 자부한 영화가 극장에서 죽을 쑤기 때문이다. ‘별점을 많이 받을수록 흥행은 물건너간다’는 게 언제부터인가 법칙처럼 돼 왔지만 ‘살인의 추억’의 놀라운 흥행(첫 주 45만 명)은 그것도 많은 가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살인의 추억’ 관객 가운데는 남자 주인공이 잘 생기지 않으면 표를 안산다(고 믿어온)는 젊은 여성 관객도, 영화가 좋다고 해도 극장에는 안 간다(고 얘기되는)는 40대 아저씨도, 조폭 영화 아니면 안 본다(는 것으로착각해 온)는 20대 젊은 남성도 끼어 있다. 결국 핵심은 잘 만든 영화인가다.
시사회에서 공짜로 본 전문가가 아니라 7,000원을 내야 하는 유료 관객이야말로 냉정한 심판관이다. 이제 제작자들은 “관객이 문제”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진짜 잘 만들었는지" 끊임없이 복기해야 할 때 같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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