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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권종열 뱅뱅어패럴(주)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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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포트/권종열 뱅뱅어패럴(주) 사장

입력
2003.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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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 청바지를 아십니까.'청바지가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패션의 코드처럼 통하던 1970∼80년대 뱅뱅 청바지는 요즘으로 치면 페레가모,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외제 명품에 버금가는 위세를 떨쳤다. 멋 부리는 여성들이 으레 명품 구두나 가방 한 두개 쯤은 갖고 있는 것처럼 청바지를 즐겨 입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두 벌쯤 갖고 있던 청바지가 뱅뱅 청바지였다.

뱅뱅 청바지가 국내 의류사에 끼친 의미는 간단치 않다. 면 바지에 파란 물감을 들인 탓에 빨기만 하면 줄어드는 가짜 청바지와 미군 부대를 통해 흘러나온 밀수 청바지가 판을 치던 시절, 제대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내 브랜드 청바지였기 때문이다. 뱅뱅어패럴(주) 권종열(70) 사장이 의류업계에서 '청바지 박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뱅뱅어패럴(주)은 재봉틀 3대와 원단 16필로 출발했다. 평양 출신으로 1·4 후퇴 당시 혈혈단신으로 내려온 청년이 1961년 평화시장 한 구석에 점포를 덜컥 차렸다. 권 사장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옷 장사가 많이 남는다'는 말만 듣고 겁없이 장사를 시작했고 '쫄쫄이'로 불렸던 군복 원단을 물들인 작업복을 주로 팔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돈을 아끼느라 직접 재단을 하고 재봉틀까지 돌리는 억척을 떨며 기반을 닦은 권 사장은 70년 운명처럼 청바지 사업과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청바지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당시 태창에서 수출하다 남은 청바지 원단 1,000여 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몽땅 사들였죠. 10년간 옷 장사를 하면서 언젠가는 나도 제대로 된 청바지를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었거든요."

결과는 대성공. 뱅뱅어패럴(주)을 설립한 권 사장은 70년대 국내 청바지 시장의 70% 이상을 독식했다. 83년 외국산 조다쉬 청바지가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쳐 잠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권 사장은 맞불 작전으로 위기를 넘겼다.

9억원을 들여 가수 전영록을 내세워 CF를 만든 덕분에 명성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옥이 입주한 주변 거리에 뱅뱅 사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의류업계의 절반 이상이 넘어졌던 외환위기의 거친 삭풍만은 피해갈 수 없었다. 신규 브랜드로 야심차게 내놓았던 여성복 사업을 포기해야 했고, 300개였던 대리점이 100개로 줄어들었다. 중국까지 날라가 협력 업체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설득했지만 소용 없었다. 하지만 당시 겪었던 고초는 이제 약이 됐다. 뱅뱅어패럴(주)은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100% 이내로 줄였고 현금거래만 하고 있다.

현재 뱅뱅을 비롯해 에드윈, UZIT, 아동복 리틀뱅뱅, 유아복 오모로이, 아큠 등 모두 6개 브랜드를 갖고 있는 중견 의류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판매가 기준)만 3,000억원을 기록했다. 권 사장은 "항상 1년 앞을 내다보아야 하고, 한번만 실수 해도 그대로 무너지고 마는 의류업계에서 30년 이상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뱅뱅의 성공은 행운이 아니라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팠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리만 잡히면 의류뿐 아니라 구두, 지갑 등 종합 브랜드로 나가는 의류업계 속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는 분야만 하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또 외국 브랜드의 제휴 유혹도 모두 뿌리쳤다. "누군들 확장하고 싶지 않고, 쉬운 길을 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길게 보면 그것이 결국 독약이 되리라고 생각했지요."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80년대 후반 돌을 사용해 물을 뺀 '스톤 워싱 청바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외국 브랜드의 기술을 빌리지 않고 독자적인 스톤 워싱 청바지를 개발하기 위해 가공 과정에 사용하는 돌만 들여온 권 사장은 1년 넘도록 돌과 씨름을 했다. 마침내 뱅뱅은 외국 브랜드 청바지보다 훨씬 색깔이 고운 스톤 워싱 청바지를 만들어 냈다.

유행에 민감한 국내 패션시장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지런해야 했다. "소비자의 기호를 미리 읽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되는 것이 패션업계죠.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장을 찾아 나름대로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만한 청바지 예찬론자가 있을까. "청바지는 캐주얼의 기본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입을 수 있고, 어지간해서는 질리지 않죠. 다른 옷들은 물 빠지면 입지 못하지만, 청바지는 물이 빠지면 오히려 색깔이 달라져 새로운 기분으로 입을 수 있어요. 오랫동안 청바지를 만들면서 나도 모르게 청바지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권사장의 '청바지 생각'이다.

/박천호 기자 toto@hk.co.kr

● 권종열 사장은 누구

1933년 평양 출생

1950년 월남

1961년 평화시장에서 의류업 시작

1970년 뱅뱅 브랜드로 국내 최초로 청바지 생산

1983년 뱅뱅사거리에 사옥 건립

1985년 뱅뱅어패럴(주) 설립

1989년∼90년 2년 연속 공업진흥청 조사에서 A획득

현재 뱅뱅, 리틀뱅뱅, 에드윈, 오모로이, 유지아이젯, 아큠 등 6개 브랜드 운영

나의 좌우명

나의 좌우명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한마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다가 그만두면 아예 가지 않은 것만도 못하다는 말처럼 한번 내가 선택한 길은 뒤돌아 보지 않고 달려왔다.

환율이 배로 뛰어 유수의 의류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은 그 어려운 외환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도 이런 좌우명 때문인 것 같다. 당시 나는 중국으로 건너가 협력업체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모두 만났다.

기억에 남는책

패션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기호에 민감해야 하고,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자주 서점에 들르는 편이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 지음)라는 책이다.

잃어버린 치즈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생쥐들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그리며 변화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는 이 책은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패션 회사 경영자에게는 필독서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안주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 삶의 가치, 사업의 의미를 치즈라고 한다면, 끊임없이 변화 자체를 즐길 수 있어야 치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오늘도 나는 나의 치즈를 찾기 위해 매장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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