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국가정보원장 임명 문제로 행정부와 입법부가 갈등을 겪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장의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지적한 반면, 국회는 대통령이 국회의 부적절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임명을 강행했다며 비난하고 있다.미국식 청문회 제도를 기초로 만든 우리 나라의 공직자 청문회 제도는 일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도입 초기라 그런 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열린 몇 번의 청문회만 해도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업무수행능력 등을 총체적으로 살피기보다는 의원들이 자신과 소속 정당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피의자 다루듯 한 의원도 있었다. 일각에서 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식 대통령제와는 달리 우리의 여당·대통령 관계는 야당에게 정치적 신뢰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청문회가 벌어지면 여당은 인사권자인 대통령 의중을 방어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으며, 야당은 청문회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잡으려 시도하고 있다. 여야의 정략적 판단이 청문회에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청문회는 글자 그대로 '후보자의 생각을 듣고 궁금한 사안을 묻는' 회의가 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방식으로는 우선 후보를 검증할만한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부풀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미를 살리려면 행정부 자체에 공직 후보자에 대한 철저하고도 강력한 검증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입법부 역시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충분히 활용하되 이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전문가 집단, NGO(비정부기구) 등이 참여하는 '국민검증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이들의 의견을 토대로 국회가 최종 검증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의 개혁방향과 그에 따른 공직자의 선택을 존중하면서 업무수행에 있어서 강력한 견제와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검증과정은 국민의 알권리 실현 차원에서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서로간의 불신과 구태는 국력을 소모할 뿐이다. 해방 이후 바뀌지 않는 정치행태에 국민들은 염증을 느끼고 있다. 국민이 대통령인 시대에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치를 해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의 창출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소망하는 것이다.
장 성 호 평화운동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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