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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이라크전쟁 前後 유엔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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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이라크전쟁 前後 유엔이 흔들린다

입력
2003.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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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이 흔들리고 있다. 직접적인 위기의 시작은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전쟁을 밀어붙이면서부터였다. 시기를 앞당겨 잡으면 2001년 9·11 테러 직후로부터 비롯된 이 과정에서 전쟁 방지와 평화 유지가 존재 이유인 유엔은 시종 속수무책이었다. 이번 이라크전의 패자는 유엔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미국은 특히 이라크전 압승 이후 유엔에 대한 홀대를 노골화하고 있다. 이라크 전후 처리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유엔을 아예 무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전후 처리에 대한 유엔의 입장은 유엔 승인 없이 부당한 전쟁을 주도한 미국에 대해 지금이라도 유엔의 역할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국제법상 유엔은 전후 복구를 담당할 유일한 합법기구이다.

전쟁에 반대한 대부분의 국가도 한결같이 '유엔을 중심으로 한 전후 처리'를 강조하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라크 주둔 미·영 연합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하고 유엔 주도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유엔이 이라크에 무기사찰단을 다시 보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미국에 의해 엉망진창이 된 국제질서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미국이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대량살상무기가 이라크에 정말 있는지 여부를 판정하는 일은 유엔의 고유한 권한이다.

그러나 승리에 도취한 미국은 계속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겉으로는 "유엔이 전후 처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 "정치적, 재정적, 육체적 대가를 치른 국가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말이 솔직하다. 최근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전후 처리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유엔은 완전히 배제되는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유엔의 위기가 처음은 아니다. 1945년 유엔 창설 이후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빈번한 거부권 행사로 기능이 마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 안건들이 유엔 밖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명실상부한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앞으로도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한 유엔의 협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독자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9·11 이후 전면에 등장한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일관된 대 유엔 정책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유엔은 비효율적이고 낡은 시스템으로 청산의 대상이다. 특히 이라크전을 유엔 무대에서 외교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미국으로서는 유엔 기피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유엔의 현재 위기를 미국의 입장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새로운 문명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이 고루한 유엔과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미래의 유엔은 이러한 차이로 인한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을 절대적 임무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패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유엔을 구상하고 있을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는 '예스', 중단기적으로는 '노'라고 답한다. 부당한 전쟁으로 국제사회에서 신망을 잃은 미국이 유엔을 무시하고 기피할 수는 있지만 당분간 스스로 새로운 유엔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미국의 적극적인 유엔 복귀를 촉구하는 미국인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학장은 "미국이 유엔에 복귀하면 잃었던 존경과 신뢰를 어느 정도 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은 미군보다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고 지적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 홉킨스대 교수도 "(미국은) 국제적 정당성의 원천이 복합적이라도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유엔은 미국의 불참과 국제사회의 강제력 부재로 해체된 2차 대전 이전의 국제연맹과 흡사한 모습이다. 자의든 타의든 변화와 개혁만이 무기력한 유엔을 거듭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美 일방주의… 열받은 아난총장

코피 아난(사진) 유엔 사무총장도 유엔의 앞날에 대해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유엔의 권위를 무시하는 미국의 일방주의 때문이다.

이라크전을 둘러싼 안보리 내 분열과 관련, "유엔이 도전받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한 아난 총장은 이라크 전후 복구만큼은 유엔이 주도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25일 폐막된 유엔 인권위원회 회의에서 그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점령군"으로 지칭해 미국측으로부터 "사실 관계를 왜곡한 실언"이라는 강력한 반발을 산 배경에는 미국에 대한 앙금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에 대한 불편한 심기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조사를 미군이 아닌 유엔 무기사찰단이 주도해야 하며, 미국의 시리아 위협에 대해서도 "이라크전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중동지역의 불안감을 증폭시켜서는 안된다"는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유엔 사찰단 활동 재개 촉구는 미군의 사찰 신뢰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유엔이 권위를 회복하려면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미국과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아난 총장이 이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주목된다.

/황유석기자

● 유엔과 안보리

유엔(UN·United Nations)'은 2차 대전 중인 1942년 1월 1일 세계 26개 국 정부가 추축국(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대항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맹세한 '유엔 선언'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국제연합'이라는 의미의 유엔이란 명칭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고안해 냈다. 1차 대전 중 비슷한 취지로 만들어진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이 유엔의 전신이다. 세계 50개 국 정부는 4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 소련 영국 미국이 제안한 내용을 토대로 유엔 헌장 초안을 작성하기 위한 회의를 가졌다. 유엔 헌장은 그 해 6월 26일 50개 국 정부가 서명했다.

유엔 헌장이 중국 프랑스 소련 영국 미국 등 5개 국과 서명국 대부분에 의해 비준된 45년 10월 24일 유엔은 공식 출범했다. 유엔은 매년 이날을 '유엔의 날(United Nations Day)'로 기념하고 있다.

유엔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등 '거부권(veto)'을 가진 5개 상임이사국과 거부권이 없는 10개 비상임이사국 등 15개 이사국으로 구성돼 있다. 각 이사국은 한 개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특정 사안에 대한 안보리 결정은 상임이사국 5개 국의 전원 찬성을 포함, 9개 국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유엔 헌장에 따라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의 결정을 따르고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진다. 유엔의 다른 산하기관이 각 회원국 정부에 특정 사안에 대해 권고할 수 있으나 회원국을 강제하는 결정은 안보리만이 내릴 수 있다.

10개 비상임이사국은 2년 임기로 매년 1월 1일 유엔 총회에서 5개 국이 번갈아 선출된다. 현재는 지난해 1월 선출된 기니 멕시코 시리아 불가리아 카메룬과 올 1월 선출된 앙골라 칠레 독일 파키스탄 스페인 등이다. 안보리 의장국은 이사국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한 달씩 맡는다. 3월 기니에 이어 4월은 멕시코가, 5월에는 파키스탄이 의장국이 된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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