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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의 국제潮流]北의 "복도외교"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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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출의 국제潮流]北의 "복도외교" 전략

입력
2003.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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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베이징협상 전략을 "상투적인 공갈"(old blackmail game)이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이 말이 맞는 것 같지만 북한이 이번 협상에 임한 태도를 자세히 뜯어보면 이전과 사뭇 다른 입장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이번에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협약의 위반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면서 자신의 핵무기 보유 사실을 미국에 알린 것은 위협(공갈) 전략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차원에서 보면, 지금까지 핵 보유 여부에 대해 취해왔던 'NCND'(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와 같은 애매한 대응전략을 확실히 포기하고, 핵 보유 사실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협상의 긴박성을 깊이 인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북한은 협상과정에서 있을 핵 투명성에 관한 지루한 논의 과정을 미리 생략토록 함으로써 협상의 초점을 보다 명확히 한 것이다. 이런 전략은 한편으로 대이라크 전쟁 이후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미국에게 북한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이를 계기로 이번 회담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선, 핵 폐기 문제나 다자간 대화틀의 요구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의제를 갖지 않고 회담에 임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북한의 전략이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 결과에 불안해진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미국 내 강경파의 입김을 강화시키는 지연전술을 쓰기 보다는, 핵 보유를 시인함으로써 협상목표를 분명히 해 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자세를 보다 구체적으로 유도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과거 협상에서 거듭 반복했던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포기, 체제보장 등을 핵 폐기 문제와 연계함으로써 핵 보유가 위협용이라기보다는 협상용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한편 경제적 지원 등 미국이 받아들이기 꺼려 하는 비정치적 조치를 협상카드에서 제외시킨 점도 이번 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비록 군사 및 안보면까지 이르진 못했지만 남한에 장관급 회담을 제의함으로써, 3자 회담에서 소외되었다는 남한 내 비판을 잠재우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전통적으로 취해왔던 남한배제 입장과는 다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 사실에 대한 놀라움을 진정하고 냉정하게 상황 판단에 들어간다면, 이번 협상은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핵 보유 사실이 공인된 상황에서 북한에게 유인책을 제공할 경우, 이것이 향후 미국의 핵 억지 정책에 미칠 영향에 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가능한 한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는 모양새를 갖추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라크 전쟁 승리 후 미국의 강경파가 유지해 온 무력사용 불사 등의 원칙이 북한 문제로 인해 약화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에 대해 강경입장을 고수하던 매파들이 구체적인 협상목표와 카드를 제시한 '새롭고 대담한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근거로 미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을 설득하는 일이다. 동시에 북-미간 협상과정과 남-북간 군사안보관계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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