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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아트/작업실… 그 오묘한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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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아트/작업실… 그 오묘한 "블랙홀"

입력
2003.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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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작업실 문을 열었다. 물감 냄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연필과 물감통, 물감 얼룩과 먼지, 지저분함…. 이곳은 결점을 지닌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작업실, 나의 남은 모든 인생이 이루어질 공간, 나의 두려움과 용기, 기쁨과 질병이 이곳에 있다. 공복 상태에서 한나절 작업을 한 것 같다. 굶는 것은 일종의 위악이고 중독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욕구가 생긴다.언젠가부터 생각해 오던 것을 화면에 옮기기 시작했다. '생각'을 어느 정도 계속하게 되면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저절로 화면으로 옮겨지는데 줄곧 던지고 있던 물음에 대해 조용히 대답을 듣게 되는 순간이다. 캔버스에 모든 집중력과 열정을 기쁘게 빼앗기는 상태, 나의 완전한 소진이 가치 있게 생각되는 유일한 시간이자 어떤 지점이다. 이 탈진은 신체를 써 버리는 것 이상이다. 이런 시간의 중노동은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거다. 아주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시간이다. 뇌와 심장을 증류수로 씻어 낸 것만 같다. 이런 날은 흔한 날이 아니다.

기다렸던 새로운 무엇,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 나타난다. 지금은 내 눈 앞에 보이는 캔버스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것으로 믿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는 꼭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전부 사람이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 아름다움은 나의 일상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절박한 나를 담아주고 있다. 혼미한 인생의 중간지대를 경유하여 빛이 있는 곳으로 가 닿을 수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성, 감성, 체력, 여태까지 맛보았던 경험적 느낌, 이런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신비의 분자들이 퍼져나간다.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이 무엇에 완전히 매료된다. 완성의 최고의 순간. 예상하고 있던 미래가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미래가 생겨나는 순간임을 느낀다. 다른 세상을 찾았기 때문에 비로소 나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내 인생의 심장 중의 심장이다. 작업실 공간 전체에 진중함과 어디론가 '향함'을 나타내는 미묘한 분위기의 색깔과 단어들이 떠돌아 다닌다. 밖은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유리창 밖의 도시는 여전히 중얼거리고 있다.

작업실 문을 잠그며 내일 아침 이 모든 것을 일깨워 준, 내 앞의 저 캔버스가 어리석고 무감각한 물체로 변신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도윤희·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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