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강아지똥이 민들레를 꽃피우면서 마침내 자신의 존재가치를 깨닫는다. 그림동화로는 물론 교과서(중1 국어)에도 실려 수많은 어린이, 청소년을 감동시켰던 권정생(67)씨의 창작동화 '강아지똥'(사진)이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최근 비디오로 출시된 30분짜리 작품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원작동화를 환상적인 화면에 담아냈다. 복사꽃이 피는 동네, 돌담길과 나지막한 초가와 기와집, 맹랑한 참새와 거만한 닭의 표정은 물론 눈물짓는 강아지똥의 다양한 표정이 압권이다. 물론 원작을 익히 알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제작과정을 담은 두번째 비디오가 더 흥미롭겠지만….애니메이션 '강아지똥'은 우리나라 최초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창작사를 표방한
(주)아이타스카스튜디오의 창립 작품. 점토조각을 일일이 손으로 움직여 표정과 동작을 만들어내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으로 '치킨런' '월레스와 그로밋'을 만든 영국의 아드만스튜디오가 주도하고 있다. 2001년 10월에 창립한 아이타스카는 첫 작품으로 '강아지똥'을 고른 후 순전한 촬영에만 3개월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아드만과 겨뤄볼 만하다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강아지똥'은 3월 도쿄에서 열린 도쿄애니메이션페어(TAF)에서 파일럿콘텐츠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대만과 영국에도 수출될 예정이다. 북미 수출도 협의중이다. (주)아이타스카스튜디오의 세 주역을 만나봤다. ―세 사람이 어떻게 만났나.
이 대표 = 문화산업에 관심이 있었는데 같은 교회 신도인 은행 지점장이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영화사를 만든다는 두 사람을 소개시켜 줬다. 몇 년 전에 삼성전자 광고 '또하나의 가족' 시리즈로 나온 '포장마차'를 기억하는가. 실의에 빠진 가장이 포장마차에 들렀는데, 딸아이한테 휴대전화로 "백점 맞았어요. 일찍 들어오세요"라는 연락을 받고 힘을 낸다. 무척 감동을 받았는데 그 광고를 만든 사람이 권감독이라고 해서 투자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 감독 = 클레이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는 매력적이지만 그때까지 수요는 광고밖에 없었다. 김 피디와는 빅슨이라는 광고회사에서 만났는데, 함께 창작 애니메이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피디에게는 시장을 꿰뚫어보는 능력과 상대방을 설득하는 말솜씨 등 나에게 없는 장점이 있어서 손잡게 됐다.
김 피디 = 권 감독은 조각을 전공해서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이니 배경을 만들 줄 아는 것은 기본이고 시나리오 콘티까지 짤 줄 안다. 국내에서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번 작품도 연출 각본 스토리보드를 모두 권 감독이 해냈다."
―작품에 만족하는가? 건전비디오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건비연)에서도 새로운 작품이라고 칭찬이 대단하던데.
이 대표 = "그런가. 고맙다. '포켓몬'이나 '디지몬'처럼 어린이들한테 인기를 끄는 애니메이션을 보면 폭력적인 요소가 너무 많다. 아이들한테 교훈이 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 시작했다."
김 피디 = "애니메이션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세계시장을 염두에 두고 가장 한국적인 작품을 골랐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그림동화를 검토한 끝에 '강아지똥'을 골랐다. 제작 후 홈페이지(doggypoo.co.kr)를 만들었는데 거기 올라있는 중학생들의 글을 보면 이 작품을 고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초기에는 '강아지똥'의 배경을 서구에도 있는 도시의 골목길로 할까 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결국은 가장 한국적인 환경을 잡자는 생각에 시골 농촌으로 했다."
권 감독 = "감독으로서는 아쉬움도 있지만 제작비가 자꾸 늘어나 마지막에는 매일 밤을 새며 일을 했다. 어려운 작업을 해준 제작진에게 감사할 뿐이다. 가장 한국적인 농촌을 찾기 위해 여러 지역을 다닌 끝에 경기 양평군 조안면 양수리를 골랐다. 현장답사후 일일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토대로 미니어처를 제작했다. 마을 옆의 강은 동강 풍경도 참조했다. 유일하게 나오는 인간인 농부의 모습은 권정생씨 얼굴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는데, 비슷해보이는가."
이 대표 = "제작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10억원) 놀랐다. 오피스텔도 팔고, 저금도 털고, 후배한테 부탁해서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융자도 얻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자꾸 제작비가 늘어나서) 하도 힘들땐 '내 유작으로 생각하자' '돈은 안벌더라도 아이들을 위한 작품 하나 남기겠다' 생각하니까 마음이 담담해지더라. 재능있는 사람들 장학금 주고 키운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다행히 외국에서 반응이 좋다. 영국 대만은 계약문서를 작성중이고, 미국쪽은 조건이 너무 좋아서 우리가 오히려 현실성을 좀 더 타진하고 있다."
―왜 하필 클레이애니메이션인가.
권 감독= "클레이애니메이션은 흙이 소재이기 모든 작업이 손끝에서 이뤄진다. 그만큼 따뜻한 것이 매력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서도 2D나 3D에 비해 덜알려져있고 수작업이 많아서 소재만 좋으면 우리가 하기 쉬운 틈새시장이 있다."(그러나 실제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등장인물과 배경을 만든 후에도 1초에 적게는 15가지, 많게는 30가지의 표정과 동작을 만들어주어 일일이 사진찍고 그것을 이어붙여서 만들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권 감독이 쉽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다.)
김 피디 = "아이타스카스튜디오에 모인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클레이 애니메이션 분야의 핵심역량들이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
권 감독 = "제작능력을 갖춘 학생들이 배출되고, 재료도 많이 수입되기 때문에 제작 자체의 어려움을 말할 것은 없고, 기획에서 부족함을 느낀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소재가 될 만한 작품 자체를 찾는 것이 힘들다."
이 대표 = "제작비의 한계 때문에 대형작품을 하기 힘들다. 미국에서는 애니메이션 작품 하나 만들려고 100억원 이상을 투자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럴 만한 투자사가 없다."
김 피디 = "창작 자체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마케팅을 정부가 지원해주었으면 한다. 칸 견본시장 같은 곳에 가면 부스는 정부에서 지원해주는데 정작 외국어나 시장 흐름을 아는 전문가는 일일이 고용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대표가 독일어 영어에 능통하기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독립 애니메이션 창작사들을 지원하려면 이런 전문가를 정부에서 고용해주는 것이 필수다. 또 텔레비젼에 국산애니메이션 의무방영제는 있으나 옛날 작품과 새로운 창작품에 대한 차별이 없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는 옛날에 만들어진 작품이 재탕삼탕된다. 독립 애니메이션을 발표할 공간과 기회가 많아져야 된다."
/서화숙 편집우원 hssuh@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애니메이션 '강아지똥'과 함께 '강아지똥 재단'도 생겨난다. 아이타스카 이만복 대표는 작품이 완성되자마자 '강아지똥 재단(doggypoo foundation)'을 만드는 작업부터 들어갔다.
'강아지똥'이 가장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존재를 통해 모든 생명체는 귀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만큼 '강아지똥재단'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소년들이 자부심을 갖고 자기만의 재능과 가능성을 찾는 일을 도와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외국의 회사들과 수출 계약을 할 때도 이 같은 뜻을 밝히고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반응은 좋다. 수출 계약이 성사단계에 있는 영국 ILCL(international licencing corporation limited)사는 비디오가 팔릴 때마다 개당 500원 정도를 '강아지똥 재단'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역시 금액을 확정하진 않았지만 수익의 일부를 기꺼이 '강아지똥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아이카스타스튜디오는 수익금의 5% 이상을 출자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소년소녀 가장이나 병든 아이 등 소외받는 청소년을 위한 기금으로 쓸 생각"이라며 "재단의 활동으로 권정생씨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한 뜻이 더욱 널리 알려지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해 옌벤대학에 5,000만원짜리 파이프오르간을 기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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