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재즈, 메탈, 국악 등 록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편력했다고 할 수 있는 나의 음악 중 못 다 완성한 것이 하나 있는데, 팝스 오케스트라가 그것이다.한두 멤버의 뛰어난 기교보다, 단원 전체의 앙상블에 성패를 거는 오케스트라는 나의 못 다 이룬 꿈이다. 그것이 처음으로 구체화되기는 박인수가 아무 말 없이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그룹 퀘션스가 해체되고 나서였다. 명동 유네스코 회관내의 한 대형 레스토랑에서 "뭐를 해도 좋으니 음악만 맡아 달라"며 제의를 해 왔던 것이다.
1971년 빛을 본 나의 첫 오케스트라 '신중현 오케스트라'는 5인조 록 밴드에 금관 주자 등을 가미, 모두 15명 편성으로 이뤄진 팝스 오케스트라였다. 레스토랑측의 제의가 적시타였던 셈이다. 이것 저것 모두 다 깨진 나로서도 그룹 활동이라면 질려버린 상태였던 터였다. 또 이전에 이교숙 선생으로부터 강의를 들으면서, 지휘자의 절도 있는 지휘에 맞춰 질서 정연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군악대 식의 음악에 호기심을 가졌다.
앙상블이 우선이었던 그룹과는 달리, 거기는 지휘자가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운영에서 매우 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적 작업에 들어가 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뭣보다 멤버 마다 편곡을 일일이 다 해야 했다. 손품이 많이 들어가는 사보(악보 베끼기) 작업은 마침 군악대에서 그 일을 마스터한 단원에게 맡겼다. 리더로서 나는 기타 연주 겸 지휘를 하면서 나의 히트곡이나 세계 명곡을 편곡해 들려 주었다.
빅 밴드란 원래 1930년대를 풍미했던 재즈 오케스트라이지만, 내가 했던 것은 록적인 색채가 강했다. 내가 했던 것들은 대개가 최초였지만, 이 경우는 마지막 세대여서 특별히 기록해 둔다. 많은 단원들을 이끈다는 현실적 어려움뿐만 아니라, 더욱이 앞으로 컴퓨터 음악이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버리는 세상에 빅 밴드는 분명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나는 1989년 용인 자연 농원 팝스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활동을 끝으로 빅 밴드를 포기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 했던 것 중에는 저작권과 관련, 젊은 공연 기획자들과 다퉜던 일이 있다. 나의 공연, 음반 등 일체 활동을 실무적으로 담당해 주겠다고 해 2002년 9월부터 사무실을 차리고 일을 해 온 'M& C(Music & Culture) 엔터테인먼트'가 제기 해 온 손해 배상 소송 때문이었다.
당초 "우리나라 문화 발전을 위해 선생님이 앞장 서 달라"며 내게 했던 제의를 너무 순진하게 받아 들였던 게 실수였다. 그들은 나의 음악적 콘텐츠를 바탕으로 연예 관련 종합 기획 사업을 해 보겠다며 인감 증명 3통을 받아 가더니, 사진과 노래 등 내가 갖고 있던 자산을 모두 가져 갔다. 나는 주식 형태로 응분의 배상이 나간다는 말을 믿고, 음반 작업 등 내가 할 일만 해 나갔다. 그러다 8개월 뒤, 그들은 내게 느닷없이 4억 7천만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걸어 왔다. 나의 히트곡들을 내가 다시 불러 취입·발매했던 더블 음반 'Body & Feel'의 판매가 예상밖으로 저조해 회사가 폐업 위기에 처했다는 요지였다. 내가 형식상 경영주(지분 30% 소유)인 만큼, 불이익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동안 우드스탁에서의 공연, 공연 장면 녹화 등 인터넷 방송을 위한 준비 작업, 공중파 인터뷰, 공연 준비 등 그들이 요청한 사업은 다 해 주었다.
경제 한파로 가요 시장이 가뜩이나 위축된 상황에서 야심작으로 냈던 음반이 효자 노릇을 하지 못 한 터에, 나는 따지자면 1억원이 넘는 음반 저작료에 대해서는 굳이 요구를 하지 않았다. 음반의 저작권과 관련된 이 문제는 4월초 법원에서 원고 기각됨으로써 일단 막을 내렸다. 2005년 이후는 그 음반과 관련된 모든 권한이 나한테로 넘어오게 됐지만, 늘그막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씁쓸하기 짝이 없다. 수입의 상당 부분이 이미 유흥비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배반감이란.
산전수전 다 겪은 나한테까지 이런 허탈한 일이 닥치는 현실이고 보면, 법적·사회적으로 약자이기 일쑤인 젊은 후배들은 어떠하겠는가. 음악 산업 구조에 치이다 보면 세상 물정 모르는 뮤지션들은 빚더미에 올라 앉기 십상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