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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노점상이 "대박 조연" 우뚝/영화 "살인의 추억" 백광호役 박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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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노점상이 "대박 조연" 우뚝/영화 "살인의 추억" 백광호役 박노식

입력
2003.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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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끈이지. 아, 맞다 가방끈으로 목을 조르더라. 그러니깐 향숙이가 파르르 떨더라…." 개봉 첫주 45만명을 동원하며, 4월 비수기 극장가에서 폭발적 관객 동원을 기록하고 있는 '살인의 추억'은 송강호 김상경은 물론 이름 모를 조연의 사실적 연기가 큰 힘이 됐다.경찰에 범인으로 몰려 현장검증까지 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선로에서 기차에 치여 죽는 동네 바보 백광호 역을 맡은 박노식(32)은 "너무 기분이 들떠 술 먹고 얼굴에 상처도 나고, 인제 자숙해야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남들은 작고한 박노식 선생님을 좋아해 지은 예명인 줄 알지만 본명"이며 "얼굴이나 이름이 특이해 한번 들으면 잊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졸업 후 '돈벌러' 상경해 경기 부천의 한 프레스 공장에서 2년간 일했다. 어릴 적 교회 연극을 주름잡으며 연기자 꿈을 키웠지만, 사시(斜視)가 심해 배우 꿈은 접은 지 오래였다. '사는 게 재미가 없어' 킥복싱을 시작했는데 팔을 크게 다쳤다. 병원에 갔더니 "팔보다 눈이 더 문제"라며 수술을 권했고, 수술 후에 배우 꿈이 되살아났다.

부천의 '극단 물뫼'에서 청소부터 시작했고, 질퍽한 전라도 사투리 덕에 김수용 감독이 일본 자금으로 만든 '사랑의 묵시록'에서는 조연을 현장에서 밀어내고 역할을 따냈다. 1999년 '침향'(김수용 감독)을 거쳐 '박하사탕'(감독 이창동)에서는 공장 야유회 장면에 "0.1초 나왔다".

2001년 7월부터 '살인의 추억' 배우 오디션이 있었지만 그는 참가하지 않았다. 연극판의 어지간한 배우들이 모두 영화에 출연하고자 했기 때문. 오디션이 끝날 무렵 선배 권유로 영화사를 찾아간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촌스러운 트레이닝복과 고무신을 준비해 감독을 감동시켰고, 7명을 추려 무악재 근처 야산에서 2차 오디션을 볼 때는 감정이 북받쳐 카메라 밖으로 뛰쳐 나가 감독의 '낙점'을 받았다.

"감독님이 '광호는 착한 바보, 얼버무리다가 죄를 뒤집어 쓰는 사람'이라고 말씀하는데 '필'이 확 꽂히더라구요." 그는 고향에서 '광호' 비슷한 사람에게 말투를 배웠다.

영화 속의 광호는 어릴 적 약을 잘 못 먹어 덜 떨어진 것 같은 '동네 북' 같은 존재이며 그는 그 역할을 만족스럽게 해냈다. "조형사(김뢰하)에게 군화발로 얼굴을 맞고 나니 막 억울하더라구요. 광호야, 왜 이렇게 맞고 사니 하는 생각에…."

출연료를 묻자 "배우에게 개런티를 왜 묻느냐"며 잠시 배우의 자존심을 지키더니 이내 "사실 먹고 사는 게 여전히 어려워 대학로 극장 앞에서 장신구를 파는 노점상을 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사람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김수용 감독님을 만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 기회였던 것 같아요."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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