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는 호박엿!"초등학교 시절 소풍 가는 날 학교 앞에서 소풍길을 끈질기게 따라오던 엿장수가 외쳐댄 선전 구호였다. 엿 판에는 고소한 깨엿도 있고 매콤한 생강엿도 있었지만 호박엿은 삶과 죽음까지 동원한 최상급 관형어를 동반한 엿 중의 엿이었다. 그런데 4학년 때 봄인지 가을인지 소풍을 다녀오고 난 다음날 담임 선생님이 "호박엿은 후박엿"이라고 하면서 후박엿은 후박나무 껍질을 벗겨서 만드는 엿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왜 울릉도인고 하니 울릉도에 후박나무가 많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초등적 지식'은 알고만 있어야지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된다는 게 내 경험이다. 내가 그 뒤로 호박엿이 나타날 때마다 "그게 아니고…" 하며 후박나무 이야기를 했더니 내게 고마워 하기는커녕 제 자랑 잘 하는, 덜 떨어진 인간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보니 어느 전문가 말씀이 후박엿이 호박엿으로 바뀐 덕분에 후박나무들이 껍질이 벗겨지는 횡액을 면했노라고 언급해 놓았다. 이제는 호박엿도 나름의 전설이 생겼는데 후박엿은 이름만 남고 영영 사라질 모양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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