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덤 앤 더머’형의 실없는 캐릭터를 자처하며 감초 연기를 선보였던 개그맨 윤정수(31)가 달라졌다.MBC ‘!느낌표’의 ‘아시아! 아시아!’ 코너 진행을 맡은 그는 요즘 국내거주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을 찾아 동남아 각국을 누비고 있다. 벌써 방글라데시, 몽골, 필리핀, 파키스탄에 이어 인도네시아까지 다녀왔다.
내세울것 없는 외모에다 외국어 실력도 딸리지만, 처음 만난 외국인 노동자의 마음을 열어주고 그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가식 없는 진지함을 발견한다.
어느새 외국인 노동자의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온 그가 20일 밤 인터넷 라디오방송 라디오21(www.radio21.co.kr)에서 DJ로 활동 중인 네팔인 서머르 타파(30)씨를 만나외국인 노동자의 애환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윤정수 안녕하세요. 얼굴이 아주 동안(童顔)이시네요. 몇 살이에요?
서머르 73년 생이요. 이름은 서머르 타파, 타파가 성(姓)이에요.
윤정수 내가 한 살 형이네. 그런데 정말 한국사람처럼 생겨서 외국인인지 몰라 보겠어. 고향은 어디?
서머르 네팔이요. 수도 카트만두에서 250㎞ 떨어진 룸비니에서 왔어요.
윤정수 마침 '아시아! 아시아!' 다음 편 때 네팔로 가는데 딱 맞아떨어졌네. 그리고 한국어가 참 유창하네. 외국인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2개 국어를 구사하는 고급 인력인데도 사람들이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 인터넷 라디오방송 DJ를 한다고 들었는데 진행은 한국말로 하나요?
서머르 물론이지요. '이주 노동자의 VOICE'란 프로그램인데 2월부터 진행했어요. '아시아! 아시아!'처럼 직접 그 나라를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초대해 그들의 애환과 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어요.
윤정수 일하러 온 건데 어려운 환경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걸 보니 참 대견하네.
서머르 우리 같은 외국인 노동자도 따뜻하게 대하는 '!느낌표'를 보면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 특히 지난주 방송된 인도인 라나씨 이야기는 정말 가슴 아팠어요.(19일 방송된 '아시아! 아시아!'에 출연한 라나씨는 병환 중에도 인도의 가족을 만나기를 애타게 원했으나 제작진이 가족을 데리러 인도로 떠난 그날 세상을 떠났다.)
윤정수 라나씨는 제작진이 찾아갔을 때 이미 혼수 상태였어. 2시간 촬영하는 동안 라나씨가 겨우 꺼낸 한 마디가 바로 '아들이 보고 싶다'였어. 다음날 빈소를 찾아 갔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데도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 그때 했던 대사가 아직도 생생해. "우리가 이 프로를 만들면서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고 했던 것은 희망입니다. 그리고 고국에 있는 가족의 행복한 모습입니다. 그것을 못 이뤄드려 죄송합니다. 그러나 슬퍼할 수만은 없습니다. 제2, 제3의 이런 아픔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제 발로 뛰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서머르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제가 1994년 연수관리업체를 통해 들어 왔을 때만 해도 참 힘들었어요. 월 210달러를 받기로 계약하고 왔는데 7개월이 지나도록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 '일하는데 왜 돈을 못 받나'하는 생각에 화가 나서 차라리 불법 체류자가 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정수 사람들은 사실 외국인 노동자의 생활을 잘 몰라. 지금도 '윤정수 네가 갈 바엔 당사자를 보내라'고 말하는 네티즌이 있거든. 불법 체류자여서 한번 출국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는 걸 모르는 거지.
서머르 맞아요. 저도 94년에 왔지만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걸요. '아시아! 아시아!'는 그 부분을 제대로 짚었던 것 같아요.
윤정수 몽골 여인 자야 편을 방송했을 때는 정말 가슴 뭉클하더라고. 4년간 못 본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유치원 다니는 딸을 만났는데 딸 아이가 낯설어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안타까웠어. 서머르도 9년 간 가족을 못 봤으니 많이 보고 싶겠네.
서머르 조카들 사진을 보면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고 깜짝 놀라요. 네팔에서는 막내가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데 제가 막내거든요. 서른 살이 됐는데도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에요.
윤정수 힘든 적은 없었어?
서머르 지금 다니는 시흥의 PVC 새시 공장 사장님은 잘 해주지만, 옛날에는 임금을 떼인 적도 많아요.
윤정수 그랬구나. 나도 방송가에서는 인동초(認冬草)로 불려.(청각장애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윤정수는 돌 무렵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어렵게 살아왔다) 그래도 아무 것도 없이 무작정 외국에 나가 살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
서머르 외국인 노동자가 자성할 부분도 있어요. 지금까지는 우리 권리를 남이 찾아 주기만 바라는 수동적 자세였지요. 한국에도 어렵게 사는 분들이 있잖아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젊고 힘이 있어요. 하지만 한국의 노동자와 차별하는 외국인 산업연수생 제도는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윤정수 외국인 노동자는 본인이 고생해도 고국에 있는 가족들은 비교적 넉넉하게 살 수 있지만, 한국 사람은 같은 돈을 벌어도 부양가족을 먹여 살리기 힘든 경우가 많아. 나도 고생을 많이 해봤지만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때로는 뿌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 그 기회가 자기한테 왔다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
서머르 '!느낌표'는 잊을 수 없는 프로에요. 앞으로는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국 산업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조명해줬으면 좋겠어요. 한국을 다녀간 사람들이 '한국은 정말 좋은 나라'라고 말할 수 있도록.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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