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체류할 때면 주말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에서 보낸다. 일요일 아침 뒷산에 오르다 보면 세월과 함께 변해가는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릴 적의 시가지 모습을 떠올리며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인가, 앞으로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길 때가 많다.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참으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세상을 돌아다녀 보면 몇 십년 동안 정체한 나라도 있고 후퇴한 나라도 있다. 변화는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변화를 이루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사회는 바뀐다. 그들이 향하는 목표와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택하는 방법론에 따라 세상이 변한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보다 나은 정치제도를 위해 싸우고 더 효율적인 경제체제를 만들기 위해 땀을 흘렸다.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를 꿈꾼 사람들은 정의롭지 못한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나라는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남과 북으로 갈리어 서로 다른 생각들의 극단적인 실험장이 되었다. 그리고 한 쪽은 자유와 풍요를 이루고, 다른 쪽은 전제주의와 빈곤에 시달리게 되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는가? 목표와 방법론의 차이가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역사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래는 우리에게 또 다른 선택을 요구한다. 미래의 도전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보할 수 없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은 돌이키기 힘들다.
한국은 지금 이념적 혼란에 빠져있다. 냉전 시대의 수구적 보수세력과 이들에 맞서 대립각을 세워 왔던 진부한 진보세력이 모두 지나간 물로 수레바퀴를 돌리려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기존의 이념과 기득권에 안주하며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엄청난 산업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국제 질서가 던지는 도전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자기의 세계관을 고수하려 한다.
이제는 새로운 생각들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향이 있을 것이나, 어느 쪽이든 중요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하나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 하는 문제, 곧 기술발전에 발맞추는 산업구조 재편에 대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국제질서 아래에서 민족의 독립성과 동일성 확보를 위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농업사회에서 자라나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새로운 세대는 정보화와 첨단기술에 바탕을 둔 고도산업화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발전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앞을 내다보는 산업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산업의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의 교육정책과 노동정책이 필요하다.
새로운 세기를 맞아 국제정치는 숨가쁘게 변하고 있다. 그 동안 부자연스러운 상태였던 한반도의 상황은 이제는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불편한 상태가 되었다. 냉전은 무너졌으나 관성적 분열과 대립은 계속되고 있다.
북쪽에는 아직도 냉전시대의 한 축을 이루었던 세력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며 시대착오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남쪽에는 냉전시대의 다른 한 축을 이루었던 세력에 의한 권력의 독점이 무너졌으나 그 반대세력마저도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분열의 현상유지를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민족 동일성을 회복하기 위한 획기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에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도도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채 수 찬 미 라이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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