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농구계 최대의 화두는 단연 국내 최장신 센터 하승진(223㎝·18·수원 삼일상고) 과 누나 하은주(202㎝·일본 시즈오카 단과대) 남매다. 28일 연세대로 진로를 결정한 하승진은 큰 키를 밑천 삼아 미국 프로농구(NBA) 진출 1호 후보로 꼽히고 있는 반면 누나 하은주는 태극마크를 마다하고 일본 귀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26일 국내 여자농구 최고 센터 정선민(29·185㎝·신세계)이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드래프트에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지명되면서 농구 본고장 미국 무대 진출의 물꼬를 터 하승진의 내년 6월 NBA 진출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제 28회 협회장기 중고농구연맹전 남고부 결승전이 열린 25일 장충체육관의 농구팬들은 두 눈이 번쩍 뜨이는 짜릿함을 느꼈다. 삼일상고 농구팀이 우르르 코트에 입장하는 순간 동료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하승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승진은 마치 구약 사무엘서에 나오는 골리앗처럼 체육관을 압도했다.
얼마후 하승진이 뒷꿈치를 살짝 들어 강력한 슬램덩크를 폭발시키자 관중석에서 '우와…' 하며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갔다.
트레이드 마크 슬램덩크
하승진은 덩크슛 이야기로 기자와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지난달 매니지먼트사인 SFX의 초청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기량 테스트를 받았던 그는 덩크슛만 주문 받았다고 전했다.
현지 트레이너는 "NBA에서 언더슛은 하지 말라. 무조건 블록슛 당한다"며 아웃사이드와 인사이드 등 여러 위치에서의 공격옵션을 지시했고 최종 마무리는 항상 덩크슛으로 끝내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계획대로 내년 6월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될 경우 하승진은 야오밍(226㎝·휴스턴 로케츠)과 비교 대상에 오를 게 뻔하다.
하승진은 "제가 야오밍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라고 겸손하게 운을 띄우더니 "내년에는 충분히 붙어 볼만 하죠"라며 자신감을 드러낸다. "아버지가 녹화해준 비디오로 야오밍을 유심히 봤는데 플레이가 단조롭고 한 발을 바닥에 붙인 상태에서 스탭을 옮겨 수비를 제치는 피봇(pivot) 플레이 때 오른쪽으로만 도는 경향이 보여요. 미리 그 쪽에서 지키고 있으면 오펜스 파울을 얻어낼 수 있죠."
'만리장성도 별거 아니예요'
스스로 밝히는 '하승진이 NBA에서 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요즘 눈에 띄게 향상된 스피드다. "제가 뛴다면 좀 뜁니다. 동료들이 70∼80% 뛸 때 저는 100% 뛰어야 균형을 이루는데 동료들이 100% 뛰면 그때부터 저는 정신력으로 뛰어요. 그러다 보니 무릎에 무리가 가긴 했지만…." 타고난 유연성은 전문가들이 인정하고 있고, 이번 대회 준결승에서 던진 17개의 야투(34점)가 모조리 성공했을 정도로 슛 정확도가 일취월장 했다.
삼일상고 이윤환 농구부장은 "지금처럼 좋아진 스피드를 풀타임 유지할 수 있는 체력만 꾸준히 키운다면 당당한 체격(140㎏)까지 더해 밀릴게 없다"고 단언했다.
승부근성도 대단하다. 이 부장은 "2001년 천안전국체전때 전주고와의 4강전에서 패한 뒤 30분이 넘게 펑펑 우는 걸 달래느라 혼났다. 분하고 억울해 하더니 지금까지 27연승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IQ 140에 컴퓨터 고수
하승진은 요즘 NBA 적응을 위한 영어 삼매경에 푹 빠져 있다. 일주일에 3번씩 학교 기숙사에서 두 명의 영어강사에게 각각 문법과 회화 개인교습을 받고 있다. 박찬호나 박세리가 TV에서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하는 모습을 본보기로 삼았다. 초등학교때 측정한 IQ가 140인 그는 "암기력이 뛰어나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일본어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하룻만에 완전히 외웠어요. 지금은 하루에 영어단어 30∼40개씩 외우고 있어요. 야오밍에게 농구와 영어실력 모두 질 생각이 없어요."
컴퓨터가 취미인 그는 친구들이 공짜로 게임사이트에 들어갈 수 있게 친절(?)을 베풀 정도로 해커 수준임을 살짝 귀띔했다. 싱거운 겉 모습과 달리 속이 꽉 찬 다재다능형이다. 관심을 모았던 키가 더 클 가능성에 대해서는 "병원에서 이제 성장판이 닫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많이 자라야 1∼2㎝"라고 밝힌다.
콜택시 운전기사가 '하승진을 태우고 있다'고 무전기로 알릴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는 그는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 주시는데 제가 NBA에 가야 하는 건 당연하지요. 농구가 천직인걸요."라며 밝게 웃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프로필
―생년월일: 1985년 8월4일
―신체조건: 223㎝, 140㎏
―혈액형: A형
―출신교: 선일초∼명지중∼삼일상고
―가족사항: 아버지 하동기씨(203㎝·전국가대표 센터) 어머니 권용숙씨(170㎝)
누나 하은주(202㎝·일본 시즈오카단과대)
―좋아하는 선수: 김동우(울산모비스), 샤킬 오닐(LA레이커스)
―별명: 하가, 서울브라더(Seoul Brother)
―취미: 컴퓨터게임
―좋아하는 음식: 돈까스
■ 전문가들이 본 하승진
'하승진은 큰 키를 가진데다 나이가 어리다.' 꿈의 무대인 미 프로농구(NBA)에 진출하기 위해 이보다 더 큰 무기는 없다. 국내 전문가들의 낙관적 전망은 이런 점에 근거하고 있다.
223㎝인 하승진은 올시즌 NBA에서 거센 황색돌풍을 일으킨 중국 출신의 야오밍(226㎝·휴스턴 로케츠)과 거의 비슷하다. NBA에는 2m가 넘는 장신들이 부지기수로 많지만 매머드급인 220㎝를 넘는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최장신 숀 브래들리(229㎝·댈러스 매버릭스)와 야오밍, 지두루나스 일거스커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아비다스 사보니스(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제이크 샤클리다스(피닉스 선즈·이상 221㎝) 등 5명 뿐이다. 이번 시즌을 기준으로 하승진의 키는 NBA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셈이다.
올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프로농구 원주 TG의 '슈퍼루키'김주성(205㎝)은 "NBA에서도 흔치 않은 키 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잘 뛴다. 다만 체중과다로 인한 무릎 관리가 관건이다. 승진이가 NBA진출의 물꼬를 튼다면 나 같은 후발주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잘 됐으면 좋겠고 나도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20살도 되지않은 어린 나이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담보 하고 있다. 하승진을 제자로 받아들이게 된 연세대 김남기 감독은 "국내 최고의 센터 서장훈이 하승진의 나이 때는 제대로 뛰지 못했는데 반해 승진이는 놀랄만한 투지와 스피드 향상 가능성이 돋보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감독은 "자유투 성공률과 미들슛이 야오밍처럼 정확하고 그 정도 키에 가지기 힘든 유연성을 지녔다"고 덧붙였다.
국가대표 센터출신인 박종천 SkyKBS 해설위원은 "국내 언론의 희망적 관측과 달리 기술적인 면과 기초체력의 측면에서 아직 미완이지만 체계적으로 체력 및 부상관리가 이뤄진다면 3∼4년 후 NBA 최고의 물건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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