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업계의 과잉투자·과당경쟁으로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상당수 후발 업체들이 SK 사태와 카드채 사태로 전례 없는 자금난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주무 부처인 정보통신부는 수출 품목 육성에만 매달리면서 내수 산업인 통신 업계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통신업계 위기의 진원지는 KT, 하나로통신, 두루넷, 온세통신, 드림라인, 데이콤 등 6개 업체가 난립해 있는 초고속 인터넷 시장. 지난달 두루넷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데 이어, 이달 들어서는 4위 업체인 온세통신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한 두루넷은 KT 등 거대 업체들의 틈바구니에서 고전하다 '백기'를 들고 말았다. 두루넷 관계자는 "초고속 인터넷 사업에 KT 등 유선 사업자들이 대거 진입, 과잉투자가 이뤄졌고 일부 업체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 부으면서 경영 압박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정통부 관계자는 "초고속 인터넷 사업의 경우 한계기업이 경쟁에서 낙오해 퇴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통부의 이 같은 인식과는 달리, 경쟁력이 있는 통신 업체마저도 유동성 곤란을 겪고 있다.
한 초고속인터넷 업체 자금 담당자는 "SK 사태와 카드채 사태 이후 신규자금 조달이 막히고, 여유자금을 맡겨뒀던 초단기금융상품(MMF)에서 돈을 뺄 수 없어 기존 자금마저 묶였다"며 "특히 두루넷과 온세통신이 법정 관리로 가면서 금융권이 통신 업계의 자금 줄을 죄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도 KT와 같은 선발 업체들은 최저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노골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후발 업체의 '줄 도산'과 통신 업계의 독점 심화로 귀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3강 구도의 이동통신 업계는 성장률 정체와 시장 독점 심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90년대 말 최고의 성장을 구가하던 이동통신 업계는 이후 성장률 하락세를 겪으면서 올 1·4분기에 전년 대비 3% 정도 성장했을 뿐이다. 이에 따라 이동통신 업체들은 가입자 수 증대보다는 가입자당 매출액(ARPU)을 늘리려 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후발 사업자를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정부의 '유효 경쟁체제 구축'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후발 사업자들의 경영난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반면 50%가 넘는 SK텔레콤의 시장 점유율(가입자 기준)은 유효 경쟁 정책에도 불구하고 더욱 늘어나고 있다.
시내 전화에서는 KT의 유일한 경쟁자인 하나로통신이 자생력 부족과 정부의 소극 대응으로 입에 풀칠하고 있는 정도고, 국제전화 사업에서는 업체 난립 등으로 후발 업체들이 힘겨워 하고 있다.
하지만 정통부는 진대제 장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이렇다 할 통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진 장관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의 경기침체와 두루넷·온세통신 사태 등으로 통신업계가 어려운데, 대책이 무엇이냐'고 묻자, "몇 달 뒤에 다시 토론하자"고 답변해 취재진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정통부는 뒤늦게 25일 유·무선 통신사업자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통신 사업 경쟁력 강화 대책반' 을 구성, 통신 사업별 유효경쟁 상황을 점검하고 불공정 행위를 제재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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