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4월29일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가 로렌주 낭시에서 태어났다. 1912년 몰(沒). 미국의 수학자 벨은 자신의 저서 '수학을 만든 사람들'에서 푸앵카레를 다룬 장(章)의 제목을 '마지막 만능 선수'라고 붙인 바 있다. 실제로 푸앵카레는 수론·대수학·기하학·해석학 등 수학의 거의 전분야에서 일급의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천문학 등 인접 과학에서도 당대를 대표할 만한 이론가였다. 그 점에서 그는 아르키메데스, 뉴턴, 가우스의 직계 후배였다.자연과학에 대한 푸앵카레의 기여가 아르키메데스나 뉴턴이나 가우스의 업적에 비해 덜 전복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도 푸앵카레가 이들 세 선배보다 더 총체적 관점을 지녔다는 데는 동의한다. 푸앵카레는 수학자나 자연과학자를 넘어서 과학사상가였기 때문이다. '과학과 가설' '과학의 가치' '과학과 방법'의 3부작은 수학자와 과학자의 사유 과정에 대한 독창적 탐구로 평가된다.
생애의 마지막 네 해를 병치레로 보내기는 했으나, 푸앵카레는 축복 속에서 살았다. 그는 54세에 프랑스 과학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인 과학아카데미 회장이 되었고, 전세계의 유명한 학회들이 앞을 다투어 그를 칭송했다. 그러나 한 일화에 따르면, 그의 명성이 군인들에게까지는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푸앵카레가 작고하고 두 해 뒤에 터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한 영국 장군이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에게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었다. 러셀은 푸앵카레라고 답했다. 장군은 실망한 표정으로 "그 작자가요?"라고 되물었다. 러셀은 즉시 상황을 판단했다. "아니, 아니, 내가 말하는 사람은 레몽이 아니라 그 사촌형 앙리에요." 앙리 푸앵카레의 사촌동생 레몽 푸앵카레는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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