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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똥박사" 심 화 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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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의 세상속으로]"똥박사" 심 화 식씨

입력
2003.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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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신문이란 수십만, 수백만이 읽는 공기(公器)이니 그 내용이 점잖고 격식도 갖춰야 하는 법. 하물며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밥상머리에 오르는 것임에랴. 그래서 최대한 품위 있게 시작해볼 참이다. 오늘의 주제는 이 것이다. '음식물의 비(非)소화분+소화관의 분비물+박리된 내장의 점막'. … 이게 도대체 뭐냐고? 그럼 '사람이나 동물이 먹은 음식물을 삭여 몸 밖으로 내보내는 찌꺼기'라면 어떨까. … 에이, 그냥 시원하게 내뱉어 버리자. 그래, '똥'이다! (이 순간 조간신문이 다뤄서는 안될 금기 하나가 또 깨졌다)이렇듯 대놓고 말하기도 힘든 '이 것' 다루는 일을 심화식(沈華植·48)씨는 평생의 업으로 삼아왔다. 그는 이 일을 전혀 꺼리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똥박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걸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니 우리도 더 이상 외면하거나 코를 싸 쥐지 말고 그를 따라 질펀한 '똥바다' (이건 김지하·金芝河의 유명한 담시 제목이다) 속에 들어가 보자.

사실 우리가 요즘 들어 이 것에 관한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게 된 건 심씨 덕이다. 그는 1980년 서울시 기술직 7급 공채로 공무원이 된 이후 줄곧 분뇨처리와 화장실 개선사업에 매달려 온 이 분야 최고 전문가다. 재작년 5급으로 명예퇴직한 뒤에도 환경기업 고문과 컨설팅 일을 하면서 줄기차게 똥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에야 다들 문화시민인 듯 깔끔을 떨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를 떠올려 보라. 상쾌한 기분으로 사뿐사뿐 출근길에 나서던 골목길 어귀에서, 한껏 교양미 풍기는 대화를 나누다 잠깐 볼일보러 들어간 찻집 화장실에서, 혹은 가슴 벅찬 여행길에 급하게 들른 휴게소 변소(양심상 차마 화장실이라고는 못 부르겠다)에서, …. 어렵사리 지키려던 우아함은 도처에서 여지없이 망가지지 않았던가. 그런 일이 많이 사라진 지금 우리가 심씨에게 헌사(獻詞)를 아끼지 말아야 함은 그래서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그는 어엿한 ROTC 포병장교 출신이다. 그런 그가 서울시에 들어가 남들이 죽어도 피하려는 일을 자진해 맡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시골에서 자랄 때 가만히 보니까 똥은 퍼낼 때도 돈 받고, (논밭에) 갖다 버릴 때도 돈을 받더라구요. 어린 마음에도 '저거 돈 되겠다' 싶어서 '커서 똥 푸는 사람이 되겠다'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과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1950년대 이전까지는 농민들이 거름값을 내면서 가져갈 만큼 똥이 대접받았다. 그러던 것이 60년대 들어 인구가 급증하면서 거꾸로 요금을 내고 치워야하는 애물단지로 바뀌었다. 서울의 경우는 이 때 왕십리에 웅덩이를 파서 수거한 것을 몽땅 갖다 버렸다. 서울시민 것을 다 담을 만한 것이면 그 규모가 어떠했으랴. 좀 과장된 전언(傳言)에 따르면 그 곳에 배를 띄울 정도였다고 하니 말 그대로 '똥바다'였으리라. 게다가 무작정 노천에다 방치하는 식이었으니 주변의 괴로움이야 가히 말할 것도 없겠다. 예전 왕십리에 별로 깨끗하지 않은 이미지가 씌워졌던 것도 이 때문이다. 70년대 위생처리장들이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이런 기막힌 풍경들이 사라졌다.

지금은 가양, 난지, 중랑하수처리장에서 일반 하수와 병합처리한 뒤 '케이크'(입맛을 다시지는 말길. 수분을 뺀 마른 것을 일컫는 전문용어니까)는 매립하거나 먼 바다에 내다 버리는 식으로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악취를 최대한 줄이고 방류수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심씨가 중요하게 해온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똥박사'로서 그의 이력은 92년 서울시 환경관리실 폐기물관리과에서 정화조와 화장실 기획업무를 맡으면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우선 정화조란 게 묻어버리고 나면 그만이어서 대충 돈을 아껴 날림시공하는 게 보통이었다. 일반주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첨단 하이테크 시설을 자랑하는 고층빌딩도 정화조는 엉망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건축주에게 부실을 지적하면 비슷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아니, 그깟 똥에다 뭐하러 그렇게 돈을 들여."

이러니 깨지고 방치된 정화조들마다 오물이 줄줄 새고 넘쳐났다. "서울시 약수터들 수질이 그 모양인 게 다 엉터리 정화조 때문입니다. 주택가에서 떨어진 높은 곳의 물도 안심할 수 없어요. 땅 속에서 스며 오르니까요. 제가 싸지른 걸 정확히 제가 먹는 꼴이지요." 그는 무려 3,000개에 달하는 정화조를 표본 추출, 일일이 들여다본 끝에 마침내 '분노의 칼'을 뽑았다.

수백명 건축주에게 뜯어 재시공하도록 명령했고 검사 때 눈감아준 건축사들 수백명에게는 영업정지 등의 극약처분을 내렸으며 정화조 시공업체 9곳은 아예 면허를 박탈해 버렸다. 전례없는 초강경 조치로도 성이 차지않은 그는 허점투성이 제도 곳곳을 뜯어고쳐 빠져나갈 구멍을 좁혔다. "갑자기 서울시가 왜 이래?" 엄청난 욕과 원망을 들었지만 어쨌든 이 때를 기점으로 정화조에 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

이 다음 그는 화장실로 눈을 돌렸다. 달동네서부터 한적한 길가, 혹은 행사장마다 아무렇게나 갖다놓은 이동식 간이공중화장실이 제일 큰 문제였다. FRP(강화플라스틱) 재질로 간신히 모양만 만들어놓은 이건 그 자체가 폐기물이었다.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낸 그의 보고서를 요약하면 이렇다.

'비위생적 악취와 부실함, 작은 탱크용량, 대변기가 도기(세라믹)가 아닌 플라스틱, 밑이 훤히 내려다보여 대변 낙하시 분뇨가 몸에 튈 우려, 겨울에는 분뇨가 얼어 산처럼 쌓여 올라옴, 대변기 앞면의 움푹 파인 깊이가 2∼3㎝에 불과해 앞으로 뻗는 소변이 몸에 되튐, ….' 어떤가. 진정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심씨는 곧바로 개량에 착수했다. 튼튼하고 색깔도 예쁜 고밀도 폴리에틸렌 재질을 사용하되 탱크용량도 늘이고 변기도 사이즈 넉넉한 도기로 바꿨다. 탱크바닥 중앙을 타원형으로 돌출시켜 분뇨가 골고루 차오르도록 했고 변기 아래 환기구와 배기팬을 설치, 담배를 피워도 밑으로 빠져나가도록 해 악취도 최소화했다. 이 공로로 대통령 취임식이나 야외 열린 음악회, 광화문 밀레니엄 행사, 잼버리 대회 등 큰 행사 때마다 간이화장실 설치문제는 반드시 그의 자문을 거치게끔 됐다.

심씨가 우리 삶을 쾌적하게 바꾸는데 끼친 영향은 이것 뿐이 아니다. 한국관광공사, 화장실시민문화연대와 함께 전국 관광지나 고속도로 휴게소 등지의 공공화장실을 거의 응접실 수준으로 바꿔가고 있는 가하면, 분뇨수거차량에 탈취기를 달도록 해 요즘엔 누구라도 이런 차를 마주하고도 별 공포심없이 지나칠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다.

특히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에게 고마워할 일이다. 개인의 일생 화장실 사용시간은 남자 2년, 여자는 3년 반이란다. 물론 용변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한한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그가 또 일을 냈다. "그렇다면 공중화장실의 남·여 대변기 숫자가 같다는 게 말이 되는가. '남자 소변기+대변기=여자 대변기'가 돼야지." 97년 여성단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국회를 통과한 이 법조항이 바로 심씨가 입안한 것이다.

20년 공무원 생활동안 총리, 시장, 감사원장, 장관 등으로부터 열손가락이 모자랄 만큼의 표창을 받고 분뇨 등 처리에 관한 개인특허도 6건이나 받거나 출원한 그는 2001년 1월 돌연 사표를 던졌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기술직보다 무조건 행정직이 우대받는 풍토가 싫었어요."

하지만 하는 일은 여전히 같다. 환경관련 기업에 관여하는 것 외에 생활오수문제에 대해 환경부 사이버민원처리역을 맡고 있고 서울시 시민환경교실에서 학생 등을 상대로 강의하고 있다. 워낙 인기강사여서 7월말까지 일정이 꽉 차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팔자인가 봅니다. 안중근(安重根) 의사는 책을 안 읽으면 그랬다는데 저는 하루라도 똥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지경이에요."

그의 요즘 관심은 똥의 재활용이다. 잘 썩혀진 똥은 자연을 살찌우는 보물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외국사례에서 익힌 지렁이 이용 분뇨처리법은 그 한가지다. 똥밭에 지렁이를 키우면 전혀 냄새없는 최고급 부식토가 만들어지고, 잘 자란 지렁이는 낚시미끼 등으로 공급된다. 이 방식은 이미 하수처리장과 지렁이농장 등에 널리 보급돼 있다.

"인체의 수분과 고형물의 비율이 79:21입니다. 건강한 똥의 성분비도 마찬가지지요. 공기 중 질소·산소의 구성비도 그렇고, 지구표면의 물과 땅 비율도 그렇지요. 또 옛날 중국에선 선한 이와 악한 이의 비율도 그렇다고 했고 …, 정사각형 안에 원을 그려 넣으면 … …." 끝도 없다. 똥으로 세상의 원리를 구하고자 하니 이쯤 되면 가히 똥박사를 넘어 '똥도인'의 경지다.

/편집위원 junlee@hk.co.kr

■똥얘기 즐기는 아이들처럼 맑고 순수

아이를 키워본 이들은 알 것이다. 어린 아이들, 특히 사내아이들이 얼마나 똥 얘기를 좋아하는 지를.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 3, 4학년 때까지는 친구들과의 대화에 온통 두서없이 '똥'소리가 끼어들고, 길가다 떨어진 개똥 한 덩이에도 까르르 자지러진다.

똥에 관한 동화책이 즐비하고 똥 전시회까지 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라. 똥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아이가 조금씩 영악해지고 순진성을 잃어가지 않던가.

정말 심씨는 딱 그 또래 아이처럼 맑고 순수해 보였다. 별 변변치 않은 이들도 지면에 오르는 마당에 정작 세상의 청결함을 위해 스스로 더러움을 마다하지 않은 그를 외면해온 것은 아무래도 언론의 중대한 직무유기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무튼 철들어 처음으로 원 없이 같이 똥 얘기를 해댄 때문일까. 그에 이끌려 한동안 정신없이 똥바다를 헤매다 나온 기분은 한줄기 청량한 바람을 쐰 듯 아주 상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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