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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한나라당 대권 포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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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한나라당 대권 포기했나

입력
2003.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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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상생의 정치가 위기에 처해 있다.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정보위원회의 부적격 판정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고 원장 임명을 강행했고, 이에 한나라당이 고 원장 해임건의안을 내겠다고 위협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개혁의 딜레마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새로운 시대에 맞는 국정원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생각할 때 고 원장과 같은 개혁적 인물을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따라서 국정원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노 대통령이 고 원장 임명을 강행한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이는 국회권한의 존중을 골자로 한 대통령과 국회 관계의 개혁, 그리고 상생의 정치를 골자로 한 여야관계의 개혁을 퇴보시키고 말았다. 즉 국정원 개혁을 선택하면 대통령―국회 관계와 여야관계의 개혁이 퇴보하고, 대통령―국회 관계와 여야관계 개혁을 위해 정보위원회의 의견을 따르면 국정원 개혁의지가 후퇴하는 딜레마이다.

법적인 면에서도, 국정원장의 인사청문회에 대통령이 국회의 의견을 따르라는 강제규정이 없기 때문에 국회가 임명하라 마라 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노 대통령의 주장이나, 인사청문회가 대통령의 독단적인 인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인 만큼 강제규정이 없더라도 국회의 의견을 존중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결국 이제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개혁적 인물이 국정원장이 되어야 한다는 노 대통령과 아직도 공안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색깔론으로 몰고 간 국회정보위원회, 나아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보수적 구주류 중 누구의 손을 국민들이 들어줄 것인가 하는 정치적 판단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시대는 단연코 노 대통령편이다. 지난 대선에서 보여주었듯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인구학적 변화이다. 2030이라고 부르는 젊은 세대들이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고 이들이 기성세대와 가장 다른 점은 미국과 북한 문제와 관련된 탈냉전적 인식이라는 것을 여론조사들은 말해주고 있다. 더구나 이 같은 추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를 통감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대선패배 후 정계를 떠나며 한나라당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합리적 보수로 변화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나라당 역시 한동안은 이 같은 자성과 자기개혁의 모습을 보여주나 싶었다. 그러나 자성의 기간은 짧았고 다시 낡은 색깔론과 시대착오적 독선이 되살아 나고 있다. 특히 이번 4·24 재보궐 선거의 승리는 이 같은 독선을 가속화할 독이다.

한나라당의 색깔론이 최근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은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회창 총재 시절에도 색깔론을 폈지만 그래도 중도적 유권자들을 잡기 위해 이를 자제했던 측면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특히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대구, 경북지역을 지역구로 한 민정계가 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이 문제이다. 이들의 경우 색깔론이 다음 총선에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색깔론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참패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며 대선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점에서 한나라당의 색깔 시비는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탈냉전 세대의 표를 몰아냄으로써, 대권을 포기하지 못해 몸부림치는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다.

물론 한나라당이 대권을 포기하더라도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낡은 냉전적 가치를 지키며 그 나름대로 우리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소수자의 목소리로 남겠다면 그것까지 말릴 필요는 없다. 선택은 한나라당의 몫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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