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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부패한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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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쓴소리]부패한 한국인

입력
2003.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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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권력은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 민중을 부패시키며, 민중의 부패는 새로운 민주권력의 성공을 어렵게 만든다. 일단 부패가 시작되면 가장 좋은 제도도 쓸모가 없으며, 자유롭고 공개된 토론은 민중에게 덕성이 있을 때엔 귀중하지만 그들이 부패했을 때엔 위험하다. 또 독재체제에서 혜택을 누렸던 사람들은 정직하고 명시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존경과 보상이 주어지는 자유로운 사회에 분개하기 때문에 새로운 민주주의 지도자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마키아벨리로부터 배우는 지도력'이라는 책에 소개된 마키아벨리의 주장이다. 우리 국민의 약 80%는 한국 사회의 부패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으며 20대와 30대의 절반이 '이민을 갈 수만 있다면 떠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한 조사 결과(한국일보 4월 24일자)를 읽으면서 마키아벨리의 위와 같은 주장을 떠올렸다.

한국인은 대체로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부패했다. 자신이 부패했다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패의 생활화'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촌지'에서부터 연고와 정실에 의한 봐주기를 '사람사는 인정' 쯤으로 가볍게 생각한다.

공개적으로 표방한 목표에 비추어 보자면, 노무현 정권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건 노 정권 사람들이 못나서도 아니고 나빠서도 아니다. 국민 상당수가 부패했고, 여전히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독재체제 하의 수혜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기 때문이다. 물론 노 정권은 많은 결함을 안고 있다. 그러나 "너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 하고 정권을 무대에 올려놓고 대다수 국민이 구경꾼 행세를 하는 지금과 같은 '극장식 시스템'이 훨씬 더 크고 근본적인 장애 요인이다.

부패의 가장 큰 문제는 부패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의 파급 효과가 더 무서운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의로운 공적 응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독재권력을 공격적으로 찬양하는 데에 앞장섰던 신문이라면 민주화된 세상에선 국민이 알아서 그 신문을 외면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응징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 정도의 부패는 나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부패한 국민이 그 신문에게 계속 지지를 보내는 한 앞으로 그 어떤 민주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개혁은 어렵게 돼 있다.

언론과 지식인에게 국민 비판은 금기다. 국민은 하늘에서 주어진 조건인 양 간주하는 게 그들의 사명이다. 그래서 '부패한 국민'은 은폐되고 늘 비판의 표적은 정권이 된다. 이건 또다른 '국민 사기극'이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부패한 국민도 투표처럼 돈이 들지 않고 비밀이 보장된 행위에선 가끔 깨끗한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투표가 끝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현실과의 부패한 타협을 하는 게 문제일 뿐이다.

부패한 관객 또는 심판을 놓고 벌이는 싸움에서 개혁 진영이 이기긴 어려우므로, 멀리 내다보고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부패와의 싸움을 벌이는 게 개혁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성급하게 선언만 앞세우지 말고 전략과 전술을 갖춘 주도면밀한 싸움을 해야 한다. 부패가 좋거나 사랑스러워서 부패와 타협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기 때문에 방법만 좋다면 그건 얼마든지 해볼 만한 싸움이다. 이 싸움엔 이념도 정치적 성향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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