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4월28일 시인 천상병이 63세로 작고했다. 맑은 영혼을 지닌 사람만이 제대로 된 시인이 될 수 있다면, 천상병은 일생을 통해 자신이 시인됨의 필요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간 사람이었다. 그의 시가 이룬 경지도 볼만하지만, 그 경지는 지인(知人)들이 한 목소리로 증언하는 시인의 맑디맑은 영혼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그의 한 시집 제목대로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었)다.'천상병은 그 영혼의 순도를 술로 유지한 것 같다. 1950∼60년대 한국 문단사를 점점이 박고 있는 떠들썩한 술자리 에피소드의 상당 부분에 천상병은 깊이 연루돼 있다. 그 연루는 그의 모지락스러운 가난과도 관련이 있었다. 술자리와의 그 깊은 연루를 만년에는 자제했음에도, 그는 간경변으로 죽었다.
천상병이 연루된 것이 술자리만은 아니다. 그는 1967년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 간첩단 사건 자체가 박정희 정권의 조작이었지만, 천상병의 연루는 특히 어이없는 일이었다. 그 얼마 전 천상병은 서울 상대 재학 시절부터의 친구인 강빈구(姜濱口)를 만나 술을 얻어 마시고 막걸리 값을 타낸 일이 있는데, 강빈구가 독일 유학 시절의 일로 간첩단 사건에 엮이면서 천상병도 함께 엮여든 것이다. 그러니, 천상병의 간첩단 사건 연루도 그의 술자리 연루와 연루돼 있었던 셈이다.
'귀천(歸天)'은 천상병의 가장 뛰어난 시에는 속하지 않지만, 가장 잘 알려진 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